- '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 [고대 격투기] /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1.
나도 '형'이 있었으면 했다.
열 살 이전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싸움이 붙기 전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너, 우리 형한테 이른다"였다. 누나만 셋이었던 나는 소심하여 평소에 싸울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간혹 만만해 보이는 친구 하나랑 붙어볼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 집 '형'한테 쥐어터질까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남자 꼬맹이들의 현실세계에서 그 '형'이란 무형의 존재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 이전에, 그 남자 꼬맹이들 실제 가정에서의 그 '형'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 집을 드나들며 관찰한 결과 형제 집안 친구들은 밖에서 안 맞는 매를 집안에서 그 '형'으로부터 맞고 사는 듯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누나들이 갑자기 상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친구네 '형'의 책장에 있던 이소룡의 [절권도 교본]이나 [당랑권 교본], [유도 교본] 같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또 몇 권은 반환하지 않는다. 물론 보나마나 그 책을 잃어버린 친구는 어느날 책주인 '형'으로부터 그 무술 '교본'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게다.
2.
"페히트부흐는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전투기술의 해설과 참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서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식자율이 높아지고 기술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으며, 귀족을 포함한 부유층이 무술 사범을 고용하여 배움을 청하는 기회가 늘어난 것도 페히트부흐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 [중세 유럽의 무술], <1부 개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사실 그 수 많았던 '교본' 즉, '싸움의 책'들은 실전에 쓸 수 없었다. '당랑권'이나 '태극권', 또는 '유도'의 기본기를 익혀서 실전에 쓸 만큼 싸움을 해보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무술에 진심인 녀석들은 그 때문에라도 숱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꼬맹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서로 뒹구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은 현상일텐데 사람만의 특징은 '교본'을 머릿속에 장착한다는 것일테고 소심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놈들은 이 '교본'을 진심으로 실험해보기 위해 약자들을 찾아다녔을게다.
<AK> 출판사에서 'Trivia Book' 시리즈를 통해 실로 오랫만에 '교본'을 보았다. '하찮은 것(trivia)'에 관한 잡학적인 책들을 엮는다는 이 시리즈 중 '오사다 류타'라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쓴 [고대 격투기](2018)와 [중세 유럽의 무술](2013)이다. 옮긴이 소개는 있는데 정작 저자 소개도 없다. 실생활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를 다뤘다는데 읽어보면 의외로 깊이도 있고 참고문헌 또한 방대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역사학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저자는 아마 일본의 어느 독방에서 인류 '무술의 역사'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를 수십년 째 파고 있는 '무술 오타쿠(덕후)'가 아닌가 싶다.
무술 '교본'의 유래는 아마 14세기경 독일인이 쓴 '페히트부흐(싸움의 책)'일 수도 있겠다. 14세기 당시는 인쇄술 혁명이 일기 전이었고 중세의 중반이었으므로 이 '교본'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무술 전문가인 저자가 본인을 고용한 후견인 귀족이나 권력자에게 헌사하는 용도 또는 독일식 무술의 대표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같은 대가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 [신약성경]이나 공자 사후 [논어]처럼 스승의 비책이 사장되지 않도록 책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의 오래된 무술영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품고 다니는 서책교본처럼 이 세상에 몇 권 안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대의 인쇄술 혁명처럼 '총기류'의 발달은 힘있는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무술'과 전쟁 조차도 모든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화'시켰다.
어릴적 내가 읽었던 각종 무술 '교본'은 물론 지금의 오사다 류타의 '사소한' 교본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적 '페히트부흐'다.
저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전까지 유럽의 독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식 유파를 소개하고 장검(롱소드)과 단검(대거) 및 쌍검(몬탄테), 스틱과 창, 도끼(폴엑스) 등의 무기술과 맨손 레슬링에 관한 잡학 지식을 풀어놓는다.
내 생각으로 중세 무술을 연 바이킹 같은 북유럽 게르만족과 중유럽 프랑크족의 개별적 각개전투가 로마의 진법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기술의 우열 차이가 아니라 문화였다. 고대 유럽의 세계최강 로마군단의 진법이 프랑크족의 손도끼(프랑크)와 바이킹의 장검(롱소드)에게 깨지기 전 서로마 국가체제는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렇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복싱(Pygne:주먹)은 영웅 테세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서술된다... 복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작중에 활약하는 영웅이 스스로 '전투는 뒤떨어지지만 주먹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당시 복싱 기술은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 하다... (당시 복싱은) 주먹을 이용한 타격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만큼 당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도 두 명의 사망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복싱에는 규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규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688년의 일이다."
- [고대 격투기], <3장 복싱개설>,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수박희(手搏戲)'가 있다. '교본'은 없지만 [한서] <애제기> 등과 같은 고대 중국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 등의 동아시아 벽화를 통해 권력자 주최의 잔치에서 무사들이 웃통을 벗고 힘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택견이나 씨름으로, 일본의 가라데나 스모로, 중국의 쿵푸 등으로 분화되었겠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으니 현대의 이종격투기 같았을 수도 있다. 당시부터도 규칙은 힘있는 자의 말에서 나왔을테니.
오사다 류타는 [고대 격투기]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및 로마시대 서기 4백년까지 무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복싱과 레슬링, 이 둘의 혼합과 같은 판크라티온(이종격투기)과 곤봉술, 검투사의 종류 등 온갖 사소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였다. 아마도 대부분 비참한 삶으로 마감했을 것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특출난 인간들은 있다. 여권이 없던 고대에도 여성 황제가 나왔고 천대받던 내시가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노예 검투사 중에도 '스타'가 되어 신분상승된 경우도 있었을 테고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은 검투사 노예해방군을 조직했다.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스파르타쿠스는 신분의 제약을 넘어 외부에 살면서 결혼까지는 못했어도 여자와 동거하며 개별살림도 했단다. 참으로 '사소'하나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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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의 혼합국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이 로마에 편입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군대로서 게르만인이나 유대인 등이 로마의 용병이 되어 실적을 쌓고 정규군이 되고 나아가 장군으로까지 승진하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 시대였다. 이 '능력주의'의 '능력'은 실력이든 뇌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용병은 물론 검투사 같은 노예의 길을 택한 이민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을 이끌었을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극소수였을 테니 도태된 다수가 살기 위해서는 타협은 물론, 적당하고 사소하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겠다.
결국 고대 로마와 같은 견고한 노예제 체제를 무너뜨린 건 다수 노예들의 '사소한' 저항들이었고 이것들이 모여 스파르타쿠스 반란 같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으리라.
3.
무술 '교본' 따위를 구해오는 '형' 같은 존재가 없었던 나는 10여세 이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용감한 형제'라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꿨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어머니를 졸라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인가 오른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애정했던 태권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다가) 나는 아마 지금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했다.
모든 무술은 '도(道)'로 통하므로 인격훈련을 위해서라도 가히 애정할만한 대상이다.
가정을 이룬 후 숨어있던 무의식에 의해 첫째 아들을 보고 둘째도 '용감한 형제'를 바랐던 무모했던 삼십대를 지나 반백의 중년에 이른 지금, 성장한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고추들에게 환멸 비슷한 걸 느끼게 된 후로는 세상 딸들이 그렇게 고맙고 이쁘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힘으로 군림하려던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렸던 친구들 형들의 실체를 본 후 우리집 세 명의 누나들이 상냥하게 보였던 현상의 반복이리라.
나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그렇게 구르며 성장하고 겪었지만, 어린 시절의 남자는 특히나 무모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죽기 전날까지도 철이 들지 않을 이 '형'들은 대의를 꿈꾸면서도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 허다한 예가 있겠지만,
관우는 자존심 세우다가 죽었고,
장비는 술주정 부리다가 죽었고,
유비는 의리를 쫓아가다 죽었다.
그들의 최후에 '촉한정통'과 '북벌통일'의 '대의'가 있었는가.
'사소한' 남자들에게 특히 '도(道)'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도 조선 정조시대인 18세기에 규장각과 장용영에서 무예 '24기'를 총망라한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가 있기는 하나, '도(道)'를 담은 이 시대 진정한 '페히트부흐'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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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격투기],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2.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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