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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Oct 05. 2024

'자불어 괴력난신'의 비밀 - 2024. 10. 5.

- [귀신이 오는 밤], 2022. / [귀신들의 땅], 2019.

'자불어 괴력난신'의 비밀

- [귀신이 오는 밤], 2022. / [귀신들의 땅], 2019.



"귀신날 :

음력 1월 16일,

한국의 세시풍속 중 하나로

이날 일을 하거나

바깥출입을 하면

귀신이 따른다고 믿고

집에서 쉬면서

액운을 막기 위한

풍습을 행하였다."

- [귀신이 오는 밤], <구픽>, 2022.




1. 어머니는 모른다고 하셨다.


어릴적 나는 엄마 앞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다.

아니 그러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주 어렸을 때 기억으로 자주 떠오르는 장면이 그 순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떠오르는 걸 보면,

분명 좋아했던 기억으로 난 믿고 있다.


엄마의 이야기는 당신이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었겠지만 주로 본인이 직접 보고 겪었다는 생생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곧 망하게 될 집의 지붕 처마를 타고 미리 빠져나간 뾰족한 귀와 발을 지닌 구렁이도, 시집간 언니네 집을 다녀오던 한 밤의 산길에서 만난 소복입은 여인의 치마 밑 여우꼬리도, 숱한 밤의 도깨비불도, 어린 시절 내 엄마는 다 직접 보았다고 했다. 대여섯 살 때 추운 겨울 눈 오는 마당에 웅크려 누운 큰 강아지를 신기해서 만져보려 나가려다 언니들에게 제지당한 이야기는 예사였다. 줄무늬가 있었던 그 큰 강아지는 엄마 고향 감악산의 산신령인 호랑이였단다.


어느 정도 큰 다음에 나는, 이 모든 엄마표 전래동화 중 믿을만한 건 호랑이 이야기 뿐이었음을 안다. 어린 내가 엄마에게 무한반복 재생을 요청했던 그 많았던 옛날이야기 중 그나마 실제상황은 1940년대에는 충남 서산에 아마도 살았을 법한 호랑이였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가 아닌 '어머니'로 부른 후에도 내 어머니는 가끔 무언가를 보신 듯 한 밤에 상갓집을 다녀온 아버지를 문 밖에 세워두고는 굵은 소금을 두루 뿌리는 것도 모자라 아예 대문 밖 눈쌓인 곳에 식칼을 밤새 꽂아두기도 했다. 아버지가 상갓집이나 제삿집에서 뭔가 '겁나 험한 것'을 데리고 왔다면서 말이다.


그런 내 어머니 조차도,

'귀신날'은 처음 들어봤다고 한다.




2. '귀신날' 또는 '귀신'의 서사


어린 내게 옛날 이야기, 주로 본인이 겪었던 '실화'로 각색된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 같은 우리 세시풍속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곡식을 심기 전 논밭을 한바탕 태우는 쥐불놀이와 각종 수호신들에게 바치는 음식들을 주워먹으러 동무들과 온 마을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던 일들이 고단했던 당신의 삶 속에서도 그나마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소환되었고, 가난하여 풀죽도 못 먹던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좋은 음식들을 많이 준비하더라는 그런 서글픈 사연들도 있었다. 농경사회였을 당시로서 가장 중요한 풍작을 농사 시작하기 전 한 해의 첫달인 음력 1월에, 보름달이 뜨는 날에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에게 비는 풍습이겠다.


그런데, 음력 1월 15일 보름날의 다음날인 1월 16일이 이른바 '귀신날'이라는 걸 나는 올해 처음 들었던 거다.



<구픽> 출판사에서 '귀신'이라는 주제를 신예 작가들에게 던져주고 그에 관한 단편소설들을 모아서 엮은 앤설러지 [귀신이 오는 밤](2022)에는 정월 대보름날 다음날이 '귀신날'로 전해져 왔다고 말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놀고 들어간 다음날, 대보름 행사를 준비하느라 열심히 일한 머슴들이 하루 쉬려고 그 다음날을 '귀신날'이라 소문냈다는 것이 그 유래란다. 음력 1월 16일 밖에 돌아다니면 귀신에게 홀리거나 잡히게 되고, 심지어 신발을 밖에 내어 놓으면 사람을 못 잡은 귀신들이 그 신발들까지 가져간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19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충남 서산에서 호랑이는 물론 구미호와 도깨비불, 심지어 이무기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까지 목격했다던 내 어머니에게조차도 정월 대보름 다음날인 음력 1월 16일 '귀신날'은 금시초문이었다. 내 어머니의 총기는 여든이 넘도록 네살 때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아 운동장에서 열린 마을주민 집단만세 행사와 옆 할머니의 '만사이~'도 여직 기억하는데도 말이다.



한편, 대만 작가 천쓰홍의 소설 [귀신들의 땅](2019)에서는 음력 7월 15일 보름날을 중심으로 한 7월 한달의 풍습인 '중원절(中元節) 이야기가 나온다.

차별과 억압의 땅인 고국 대만과 시골 고향을 떠나 독일 베를린을 귀신처럼 떠돌다가 다시 귀신들이 여전히 흘러다니는 고향으로 돌아온 동성애자가 회상하는 시간의 중심이 바로 '중원절'이다. 이 역시 한 해 농사의 수확 전인 한 여름에 풍작을 기원하는 풍습이겠는데, 음력 7월 1일 '귀문(鬼門)'이 열리면서 온갖 귀신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7월 15일 보름달이 뜨면 귀신의 문이 가장 활짝 열린다는 설이다. 대만인들은 7월 말 귀신의 문이 닫힐 때까지 주인 없는 풍성한 제삿상을 계속 차려놓는다고 한다.


우리의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은 '상원(上元)이고 대만의 음력 7월은 '중원절(中元節)'이다.

우리 귀신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다음날인 1월 16일에 돌아다니고, 대만의 귀신들은 음력 7월 내내 돌아다니는 거다.


그러나 귀신들이 스스로 돌아다니는 걸까.

내 보기엔 사람들이 불러내는 거다.

알아서 아무때나 돌아다니며 해코지 못하게 보름달이 뜨는 특정한 달과 날을 잡아 불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참에 모여 고된 삶의 나날을 잊고 한바탕 산 사람들도 먹고 놀자는 거다.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말이다.


과연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다.

'귀신날' 또는 '귀신' 서사는,

먹고 살기 위해서든 놀기 위해서든,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부여에도 있었고, 고구려에도, 동예와 옥저에도 그 풍년 기원 축제들은 있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57


3. '소외'와 '반전', 그리고 '자불어 괴력난신'


'귀신'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같은 귀신의 서사를 보다보면 나는 두 가지 개념을 떠올린다.


1) 하나는 '소외'다.


대부분의 귀신들은 원혼의 형태로 살아생전 온갖 차별을 받던 자들이다.

천쓰홍의 소설 [귀신들의 땅]에서는 산 자나 망자나 모두 '귀신'이다. 주인공은 동성애 남자로 오래도록 차별받았고 다섯 누나들은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과 여성차별에 익숙했으며 차별의 행위자로서 엄마 또한 대대로 억압받던 시대의 희생자였다. 결론에서는 말없이 묵묵했던 주인공의 아버지조차 대만 중화민국의 계엄과 억압에 반항하려던 비밀독서회원이었고 숨은 동성애자였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1


갖은 차별로 인해 '소외'된 자들은 자신들의 땅에 정착하지 못한 채 '귀신'이 되어 배회한다.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1848)이 "공산주의라는 '유령(귀신)'이 전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서문>)고 선언했지만 그 귀신은 바로 현실화되지 않았다. '공산당'의 아류들은 등장했다가 명멸했지만 계급차별과 노동소외가 현존하는 한 언제까지나 '귀신'이 되어 인류의 주변을 맴돈다.

장화와 홍련의 신원은 용감한 평안도 철산부사가 풀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성차별의 땅에서는 장화홍련의 혼은 여전히 떠돌아다닐 게다.


2) 또 다른 하나는 '반전'이다.


영화 [식스센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귀신의 서사에서 궁극에는 화자 자신이 귀신으로 드러난다.

우리 신예작가들의 '귀신' 선집 [귀신이 오는 밤](2022)의 첫 작품인 배명은 작가의 <1월 16일생>의 화자도 알고보니 본인이 귀신이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내가 귀신인지 귀신이 나인지 알 수 없는 경계가 바로 이 '반전'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쉽게 말하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사람'이라는 거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46


공자는 [논어]에서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이라 했다.


항상 겸손했던 공자가 현세의 '사람'에 대한 일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귀신'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반문했다는 말이다. 유교는 여타 종교들과 다르게 절대신이나 내세 또는 사물에 깃든 신이나 귀신 같은 존재를 믿지 않는다. 제사를 중시하지만 유교의 그것은 귀신을 섬기는 게 아니다. 유교의 제삿상을 받는 조상신은 내세 또는 명부에서 '귀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바람과 공기처럼, 음양오행처럼 항상 떠돌아다니는 기운에 가깝다. 인간사의 요체인 현실정치를 중시하며 한편으로 [주역/역경] 같은 우주만물의 운동원리를 철학적으로 사고한 성리학의 급진적인 요소에서 조상신이라는 '귀신'은 '사람'과는 또 다른 '물질적'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보적 성리학은 '유물론'의 단초를 지니고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29


모든 '귀신' 이야기는 결국,

현실에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현실 밖 '귀신'을 멀리 하고 현실 속 '사람'을 중시한 공자의 '자불어 괴력난신'의 비밀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9


***


1. [귀신이 오는 밤 - 귀신날 호러 단편선], 배명은 외, <구픽>, 2022.

2. [귀신들의 땅(鬼地方)](2019), 천쓰홍, 김태성 옮김, <민음사>, 2023.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eatrice1007&logNo=223607712038&navType=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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