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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18. 2020

[사기열전(史記列傳] - 사마천(司馬遷)

'태산(泰山)’을 기다리며

‘태산(泰山)’을 기다리며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을 통해 보는 고사성어(故事成語)(2)
: ‘이사열전(李斯列傳)’,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의 현대적 이해(理解)
 
어느 나라든 큰 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름을 받아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神話)에 나오는 거신족(巨神族) 티탄(Titan)의 아들인 아틀라스(Atlas)는 지금도 지중해의 남쪽에서 거대한 산의 형상으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데, 땅위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옛적부터 자신이 숭상하는 하늘과 맞닿는 매개로서 산을 올려다 봤으며, 그 산이 거대할수록 하늘과 더욱 가깝게 다가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와 중국의 민중들도 고단한 삶 속에서 큰 산을 그렇게 숭배해 왔다.
중국에는 ‘오악(五岳)’이라 하여 동악(東岳)인 산동의 태산(泰山), 서악(西岳)인 섬서의 화산(華山), 중악(中岳)인 하남의 숭산(崇山), 남악(南岳)인 호남의 형산(衡山), 북악(北岳)인 산서의 항산(桓山)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태산(泰山)은 ‘오악지장(五岳之長)’ 등으로 불리며 천하제일의 명산(名山)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유인 즉, 중국의 고대전설 속 제왕(帝王)들이 태산에서 하늘에 뜻을 받는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인데, 이를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시현(示顯)한 사람이 바로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였던 최초의 황제(皇帝), 진시황(秦始皇)이었다.
7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에 13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른 진왕(秦王) 정(政;진시황의 이름)이 천하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시기부터 공손앙(公孫鞅)과 같은 타국 출신 관리들의 ‘개혁’적 정책-물론 지배계급으로부터의 편향(偏向)된 개혁(改革)이긴 했지만-들에 기인하는데, 이는 그 당시 유행하던 무수한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하나였던  ‘법가사상(法家思想)’의 정치적 실현이었으며, 서쪽 변방의 진나라가 동쪽 6개국의 온건한 정책들과 달리 전 국토가 하나의 거대한 전쟁터였던 당시의 정세에 걸맞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자국, 타국의 구분없이 능력있는 유세객(遊說客)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인재등용 방식에 힘입었던 것이다. 물론 인사(人事)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당시 민중들에게 너무도 혹독한 정책을 가했던 법가사상의 추종자들은 모두 자신이 만든 악독한 법제와 형벌에 제 다리가 걸려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는 바, 후에 상앙(商鞅)으로 불리며 권세를 누리던 공손앙이 그랬고, 경위야 어찌되었든 진시황을 왕위에 오르게끔 했던 여불위(呂不韋)도 그랬으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한(韓)나라 출신 공자(公子) 한비자(韓非子)와 진나라 승상(丞相) 이사(李斯)도 그와 비슷한 운명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하늘로부터 뜻을 받아 ‘천자(天子)’가 되려던 당시의 ‘제왕’들은 대다수 민중들에 대한 위와 같은 가혹한 압제(壓制)를 그 존립의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전국시대 말기와 진시황의 통일시기에 이러한 ‘법가정치’의 정점(頂点)에 바로 이사(李斯)가 있다.
 
이사(李斯)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상채(上蔡) 출신으로 젊은 시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우연한 깨달음을 통해 법가의 창시자 격인 순자(荀子) 문하에서 수학(修學)한 후 부귀공명(富貴功名)과 출세를 위해 조국 초나라를 떠나 강대국 진나라에서 당시 승상의 자리에 있던 여불위의 식객(食客)이 되고 타국출신 관리로서의 최고 직책인 객경(客卿)을 거쳐 여불위 사후 승상의 자리에 올라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문수학했던 한비자를 모함하여 자결케 하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주도했으며 통일 후 진나라 말에 환관 조고(趙高)와 함께 나라의 멸망을 초래하면서 그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으나 지극히 출세지향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적 행보를 통해 오랜기간 민중 위에 군림했던 저열한 간신(奸臣)이기도 했다.
그런 이사가 여불위 사후 승상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무렵, 한(韓)나라 출신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이 진행하던 대규모 관개공사(灌漑工事)가 문제가 되었다. 그 공사는 진나라 국력을 낭비케 하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진시황의 어머니 조태후의 애인이던 노애(노毐)의 반란이 진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그에 연루(連累)된 한(韓)나라 출신 여불위의 죽음이 있었던 당시, 진나라 출신 관리들은 이를 계기로 타국 출신 관리들을 추방하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정국(政局)을 안정시키기 위해 진시황은 ‘축객령(逐客令)’을 포고하였는데, 이는 초나라 출신 출세주의자 이사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에 이사는 다음과 같은 표문(表文)을 황제에게 올렸던 바, 이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사기>의 ‘이사열전’에 수록되어 있고 그 중에 또 하나의 고사성어가 숨은 빛을 발하고 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이고, 큰 강과 바다는 아무리 작은 시냇물이라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하의 패자(覇者)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위엄(威嚴)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 李斯, <諫逐客書;간축객서> 中
 
이를 원문(原文)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泰山不讓土壤 (泰:클 태/山:뫼 산/不:아니할 불/讓:사양할 양/土:흙 토/壤:흙 양)
故能成其大 (故:그런고로 고/能:능할 능/成:이룰 성/其:그러할 기/大:클 대)
河海不擇細流(河:물 하/海:바다 해/不:아니할 불/擇:고를 택/細:가늘 세/流:흐름 류)
故能就其深(故:그런고로 고/能:능할 능/就:이룰 취/其:그러할 기/深:깊을 심) … 이하 생략.
 
이사의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 표문을 읽고 감명을 받은 진시황은 ‘축객령’을 접고 이사를 복권시킴으로써 폭넓은 인재등용 방식을 유지하였고 마침내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렇게 클 수 있었다(泰山不讓土壤)’는 구절을 절대군주제의 역사적 한계와 이사의 ‘출세지상주의’라는 지방질을 빼고 이해하면 어떨까. 구조조정이 ‘합리적인’ 기업문화, 사회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생존권이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갈수록 위태해져만 가는 지금, 모든 사람이 고르게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대다수 사람들의 작지만 특별한 능력과 개성을 사양(辭讓)하지 않는 ‘태산(泰山)’의 모습을 우리 살고 있는 세상을 통해 그려보는 것은 진정 이상적이고 멀기만 한 일인 것인가.


(2003년 7월)


- 고사성어 발췌

1. [史記], <列傳’>, 司馬遷 著, 김진연 編譯, <서해문집>, 2002.

2. [史記  列傳], 司馬遷 著, 김원중 譯,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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