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스 Aug 13. 2020

손편지의 의미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 마음의 합


회사가 20주년을 맞아 고마운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사실 선물이라기보다는 기념품에 가깝다.


10주년 되는 해 뭔가 기념할만한 선물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급조된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수건에 새길 문구를 직원들끼리 공모하고 일사천리로 기념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20주년에는 수건을 2장 드린다’는 투박한 문구도 그해 채택된 문구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20주년 되는 해 또다시 수건을 준비했다. 방식도 동일하게 직원들에게 수건에 새길 문구를 아이디어로 모았다. 이를테면 '화려한 수건이 나를 감싸네', '언능 씻고 출근해 돈 벌어야지', '인상 펴 내가 말릴게'와 같은 문구다. 수건을 2장 주는 대신 이번에는 퀄리티가 향상된 제품에 문구를 새겼다. 양보다는 질을 택한 셈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게 수건 하나로만 될까 싶어 한 명 한 명 기억나는 분들에게 카드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커졌다. 고마운 사람이 계속 떠올랐다. 쓰다 보니 편지를 받게 될 사람에 따라 각별한 추억도 떠오르고 힘든 시기를 함께한 정체 모를 연대감에 혼자 뭉클해지기도 했다. 


이메일로 쉽게 업무를 처리하고 모바일로도 메시지를 빠르게 주고받는 세상에 난데없이 손편지라니. 쓰면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저린 손가락을 흔들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요즘은 손으로 쓴 걸 ‘편지’라고 하지 않고 ‘손편지’라고 한다. 손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희소성이 생기고 상당히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의식을 행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마디로 정성 깃든 편지로 거듭난다고나 할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에 손편지는 더욱 사무치는 감정 표시였다. 마음을 몰래 전하는 수단이었다. 기다림 끝에 돌려받은 답장은 몇 날 며칠을 곁에 두고 읽어 꼬깃한 종이가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귀한 콘텐츠였다. 


요즘은 문자와 카톡이 그리고 이메일이 이 마음을 대신한다. 희소성 대신 간편함을 택하는 시대에 손편지는 일반적이지 않은 의외의 방식이 되었고 정성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다. 


한 자 한 자 꾹 꾹 눌러 담은 문장이 때로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반듯한 글자를 종이에 얹기 위해서 구겨버려 진 종이도 많았다. 감정선이 가장 도드라진다는 야밤에 쓴 편지는 날이 밝아 가차 없는 자기 검열에 폐기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30여 통이 넘는 손편지를 악착같이 써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절반의 마음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달된 정성들이 문자로 메일로 그리고 전화로는 담을 수 없는 온전한 마음으로 남길 바랬다. 마음까지는 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돌아오는 감사의 말들 이 무료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올 연말에는 연하장에 도전해봐야겠다. 이왕이면 필름 카메라로 혼자 보기 아까웠던 세상의 진면목을 함께 담아 전해야겠다. 그러려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야겠다. 


사실은 정성보다 상대를 향한 온전한 마음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손편지는 단순한 정성이 아닌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의 합이다. 





작가의 이전글 PT를 마치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