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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Oct 23. 2021

그대가 있어 초라하지 않았다/백지혜


 “무슨 얘기하고 싶어?”

딸아이가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고민하고 앉아있는 딸을 보고 있으니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내게도 일기장이 있었다. 빨갛고 두꺼운 노트였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끼적이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이 빨라졌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틈만 나면 그 노트를 펼치고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대부분이 내게 쓴 편지 형식이었다. 정신 못 차리고 딴생각으로 괴로울 때면 나는 그걸 두고 일기로 나를 혼냈더랬다. 못난 일을 저질렀으면 응당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며 꾸짖었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부턴 스스로 그렇게 관용적인데, 어린 시절에 난, 나의 잘잘못을 채근하고 또 채근했다.


그렇게 매일 쓰고 또 쓰다가 어느 날은 진짜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고, 주고받는 편지 놀이가 재미있어서 한동안 일기 쓰기를 미뤘다. 편지 놀이 할 사람이 떠나면 어김없이 내 앞에 빨간 노트를 펼치고 나를 마주했고, 사람을 떠나보낸 나를 위로했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 나는, 나를 잘 다독여서 다시 제 자리에 앉혀놓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임무를 마친 빨간 노트는 또 옷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나를 위해 글을 쓰다 누군가에게 좋은 글이 되고파서 ‘별글’을 시작했다. 언어라는 건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고마운 수단이 되고, 그런 언어들로 좋은 글을 쓴다면 내가 품어놓은 근사한 마음들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진심이 사골국처럼 우러나왔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삶이 고단하다 느껴질 때면 ‘별글’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치유했다. 그동안 내 글을 받아 읽었던 구독자들도 그러했길 바란다. 진심이 담긴 글은 진심이 필요한 사람들을 알아채는 법이다. 그런 분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았고, 그 기운으로 하루를 버텼다. ‘별글’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단 하나의 생각은 간단하지만 특별하다.


 ‘진심을 담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내 진심을 읽어주는 그대들이 있었기에 초라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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