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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Oct 23. 2021

마지막을 매듭짓다/김태희


“태희야, 너는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써?”


시조와 시를 즐겨 쓰던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듣던 말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되냐, 연습을 많이 하면 그렇게 되냐, ‘어떻게?’에 대한 물음표를 수 없이 받았지만 글쎄 뚜렷한 답을 내놓은 적은 없었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의 의미도 몰랐고(지금도 모르지만), 글 잘 쓴다는 사람이 세상엔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하늘에 별을 보며,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자를 한 단어로 만들고, 그 단어를 구절로 만들어 세상의 평가를 받을 뿐이었다.

세상의 평가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고 시 쓰기를 그만둔 이유이기도 했다. 그동안 썼던 수 십 권의 습작 노트도 제주도 고향집에 내려가 다 태워버렸다. 이후, 나를 담은 글을 쓴 건 별글을 만나서였다.


고등학교 은사이신 김용만 선생님께서 어느 날 연락을 주셨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모으고 있고, 연령대별로 다양하게 모으고 있는데 가장 어린 작가로 나를 추천하셨다 했다.

작가. 한 때는 내 글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세상의 평가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글마저 청산해버린 내가 다시 글을 써도 될까라는 생각에 마음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늘이 예뻐서, 나에게 닿는 바람이 살랑거려서,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 너무 예뻐서, 내 이쁜 강아지의 머리가 보드라워서, 발걸음 닿는 곳이 너무 예쁜 길이라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글로 써 내려갔던 그때가 그립기 시작했다. 버리지 못한 글 두 편을 예린 작가님께 보냈고 그렇게 별글의 바람이 내게 닿았다. 별글의 바람은 순식간에 회오리가 되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마음에 점점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싶단 마음이 덮여가고 있었다. 어느샌가 어떤 글을 써볼까 하며 볼펜을 잡고 죽죽 선을 긋는 내가 있었다.


별글을 쓰면서 새로운 순간을 새겼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따뜻하고 찬란한 순간이 참 많았음을 느꼈다. 별글을 써 내려간다는 건 시간이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새로운 순간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특히 <내가 지키지 못한 유산>은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을 담은 진한 술 한잔 같은 글이다.


내 인생은 어느 날 봄이었다 어느 날 겨울이었다, 또 어느 날은 여름이 너무 길게 오기도 할 것 같다. 앞으로 나와 연이 있다면 별글은 훗날 내 인생을 엮은 책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에서야 다 태워버린 내 습작 노트가 그립다. 태우면서 날려간 재들이 지금쯤 제주도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지 바다에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땅으로 잘 돌아갔다면 나무와 풀과 꽃의 양분이 되어 누군가 지나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무에 기대보고, 풀을 사그락 밟으며 또 다른 인생의 조각을 새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찬란한 순간이 세상에 스며들었으리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 본다.


이처럼 우리가 쓴 글들이 세상 곳곳에서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고, 별글이란 이름처럼 세상에 반짝일 수 있는 글이길 바라며 매듭 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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