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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Mar 14. 2020

감사한 보통의 일상

어릴 적에 가끔 설거지를 할 때면 싱크대에 찌든 때를 볼 때마다 엄마에게 잔소리했다.
"엄마 좀 깨끗하게 살면 안 돼?"
빡빡하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딸이었다.

아이 둘을 낳고 엄마 자리에 서보니 비로소 엄마가 보인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와서도 내일 아침 밥상을 위해 쌀을 씻고 국을 끓어놓던 엄마를, 켜켜이 쌓인 밥그릇에 한숨 내쉬던 엄마를.
묵묵히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는 일은 엄마의 눈물과 시간과 맞바꿔야 했음을.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엄마 스스로를 삶에 갈아 넣어야 했음을.

밥 짓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돌리는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엄마의 마음과 마주한다.
다람쥐처럼 양 볼 가득 음식을 채워 먹는 아이의 얼굴에 가스레인지 앞에서 고된 시간은 헛된 일이 아니게 된다.
조그마한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뽀뽀해주는 아이의 애교에 지쳤던 하루를 보상받는다.

어제와 비슷한 보통의 오늘 속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매화꽃이 봄을 맞이한 2년 전 그 날보다 봄은 더 빨리 찾아왔다.
거리는 벌써 분홍 벚꽃잎이 번져 꽃 사태가 일어났다.
초 불기가 마냥 행복한 아이는 '생일'이라는 말에  눈이 없어질 정도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생의 탄생, 그리고 내가 엄마로 태어난 날.
보통의 삶을 잘 견뎌준 나와 남편, 내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 행복한 하온이의 두 번째 생일을 온 마음을 다해 감사히 맞이한다.
고맙고 행복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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