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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Jul 10. 2018

임신과 출산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더라.

들어가는 글.

서글펐다.


물리치료실 딱딱한 침대 위. 뜨거운 핫팩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여졌다.


“병을 키워서 왔기 때문에 원인이 뭔지 알 수 없어요. 병으로 떡(!)을 쳐 온 환자는 어디 병원 가서도 환영 못 받습니다.”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환자는 질문도 못하나?!’


의사의 불친절한 말에 화부터 났다.

손목, 허리, 골반. 지난 3월 출산 이후 아이의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관절에 무리가 갔다.

모유수유 중이라 주사도 약도 처방 못하고 평생 처음으로 반깁스를 한 채 병원에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한 동생의 전화가 왔다.

“언니, 임신 7주 차인데 너무 불안해. 몸이 안 좋아서 임신 사실 알리고 단축근무 신청했어.

근데 직장동료들이 축하한다는 말은커녕 자기들 근무시간 늘어나니깐 눈치만 주네.

정말 속상하다.”


위로의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퍼뜩 지난날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의 말에 공감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리자. 대체 인력부터 고민하던 직장 상사. 그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불편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이 아직 선연하다.


‘저출산 시대, 아이가 국가경쟁력이다.’

공익광고 문구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헛구호일 뿐이었다.

물론 임신, 출산, 육아는 봄볕처럼 따사롭고 때론 첫사랑을 만나듯 설렘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바라고 바랐던 임신 그리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왜 아무도 내게 이 일들이 때로는 아프고 서글프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며 의아했다.


하얀 포장지로 단정하게 포장해놓은 것처럼 느껴졌던 임신과 출산, 육아. 이들의 민낯을 누군가 알려줬더라면 육아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에 생긴 생채기가 덜 아팠을 것 같다.


이 글의 끝에 ‘엄마’, ‘아빠’의 이름표를 달게 될 당신의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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