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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Jul 18. 2018

내 몸이 나의 몸이 아니다.

임신 (1)

‘으아악. 자기야 나 다리 경련!!!’

자다 말고 옆에 있던 신랑을 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잠결에 뒤척였을 뿐인데 발끝에서부터 허벅지까지 경련이 일어났다. 신랑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다리를 주물었다.  

임신 10주 차. 내 몸이 나의 몸이 아니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10일. 임신테스트기에는 빨간색 선 두 줄이 선명했다. 포궁에는 콩알만 한 점이 생겼다. 점은 2cm의 둥근 원이 됐고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드라마를 보면 임산부는 ‘우웩’하고 입덧하고 무거운 배 때문에 허리를 받쳐 뒤뚱거리며 걸어 다녔다. 내가 알던 임산부는 그 모습이 전부였다.



2주에 한 번 초음파로 만나는 아이는 캄캄한 포궁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람의 모습을 갖춰갔다.

아이가 포궁 속에서 커갈수록 내 몸은 낯설어졌다.


임신 10주 후 밤마다 다리 경련은 수시로 찾아왔다. 뒤척였을 뿐인데 발가락 끝부터 허벅지까지 찌릿 거리며 경련이 일어났다.  

경련이 하도 자주 일어나서 나중에는 신랑을 깨우지 않고 혼자 발끝을 잡고 경련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가 포궁에 자리 잡고 안정기인 20주까지 눈 위는 바늘로 찌르듯 지끈거렸고, 어지러웠다. 혈액량이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변화였다. 지인은 임신 당시 빈혈이 너무 심해 길 한복판에서 여러 번 쓰러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임신성 빈혈로 결국 출산휴가를 쓰기 전 직장을 관둬야 했다. 그에 비하면 내 고통은 새발의 피였다.


그리고 임신 21주. 안정기에 접어들자 좀 살만해졌다.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똥배처럼 볼록 튀어나왔다. 임산부 티가 꽤 났다.

‘임산부는 잘 먹어야 된다는데, 이제 몸무게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야지!’

나의 기대와 달리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호르몬 변화로 메스꺼움, 소화장애가 찾아왔다.

입덧은 없었지만 식사 뒤에는 꼭 자몽주스 한 컵을 마셔줘야 메스꺼움이 사라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에 겨웠다가도 뒤돌아서면 소화가 안 돼 끙끙 앓았다.

소화제를 먹을 수도 없으니 소화가 될 때까지 집 앞 공원을 신랑 손을 잡고 걷고 또 걸었다.

불어난 양수, 늘어난 아이 무게로 포궁은 척추를 눌렀다.

숙면은 머나먼 이야기였고, 천정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자는 건 호사스러웠다.



임신 35주 차.

포궁이 갈비뼈를 눌렀다. 날카로운 뼈가 살을 찌르는 듯했다.

 ‘이러다 갈비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오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어 괜히 겁이 났다. 캄캄한 밤 스마트폰으로 ‘임산부’, ‘갈비뼈’ 두 단어를 검색하자 ‘포궁이 갈비뼈를 눌러서 갈비뼈에 금이 갔어요’ 등등 무서운 이야기들이 빼곡했다.

‘갈비뼈 금가도 치료도 못하잖아!’ 침대에 누워 자세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바꿨다가, 손을 위로 들어다 내렸다 반복해도 아픔은 가시질 않았다.

다리 경련, 소화장애, 요통, 갈비뼈 통증. 임신 주수가 늘어나면서 통증도 하나씩 더해갔다.



임신 37주.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에취’

갑자기 나온 재채기에 소변이 찔끔 흘러나왔다.

‘세상에 요실금이라니. 요실금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당황한 나머지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퍼뜩 ‘임신 출산 육아백과’ 책을 뒤적였다.


“막달이 되면 포궁은 더욱 심하게 방광을 압박한다. 방광과 요도 사이의 구조적 형태가 어긋나 요도 괄약근의 조여 주는 기능이 제 기능을 못한다. 따라서 갑자기 웃거나 힘을 줄 때, 소변이 조금씩 묻어나는 경우가 있다.”


내 몸의 변화에 대해 너무나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책은 마치 ‘임신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뭘 호들갑을 떨고 그래’ 라며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에서 말한 변화들은 매번 갑작스럽게 집을 방문한 손님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라. 며칠 감지 않은 떡진 머리에 민낯으로 있는데, 집 앞이라며 문 열라고 손님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을. 얼마나 놀랍고 당황스러운지.

임신으로 변하는 몸을 보고 느낄 때마다 그런 심정이었다.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임신 당시 주위 아이 엄마들에게 고통을 호소할 때면,

그들은 짧게는 8년, 길게는 25년 전 자신이 임신 당시 겪은 몸의 변화를 또렷이 기억했다.


‘역류성 식도염에 밥 한술 뜨기가 힘들었어.’,

'임신성 당뇨가 와서 매 식사마다 혈당 확인하고 음식도 가려먹고 정말 힘들었지.'

‘자궁 경부가 짧아져서 몇 달을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지.’


임신 그리고 몸의 변화.

엄마가 되기 위한 ‘희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견딜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까. '

2018년 3월 16일. 달력을 바라보며 출산 예정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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