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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Aug 08. 2018

널 만나는 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출산

겨우내 잠들었던 순백의 매화꽃이 ‘퐁’ 하고 꽃잎을 터뜨렸다.

공원을 거닐며 살랑대는 봄소식에 마음도 덩달아 울렁이던 날이었다.


출산예정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었다.

걷기는 순산에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에 30주부터 신랑과 손잡고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흙 위로 솟아나는 봄을 느끼며 걸었다.

‘찌릿’ 포궁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10분 뒤 다시 ‘찌릿’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발길을 서둘러 집으로 옮겼다.

진통은 1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그리고 이슬.


 ‘출산이 임박해왔구나.’

임신 내내 가장 두려운 것이 출산이었다.

많은 사람의 출산 후기를 읽으며 두려움을 잠재우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 각양각색의 출산 후기를 읽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포심은 더해갔다.


출산 신호는 생각보다 평온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 외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꾸려놓은 출산 가방을 챙겨 3월 13일 오후 11시 병원으로 향했다.

자궁경부는 1cm.

10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에 비해 적게 열렸다. 자궁수축을 측정하는 측정기를 배에 붙인 채 자궁경부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자궁경부는 열릴 생각을 않았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허리에는 더 무게가 실렸다.

일어서서 걸으면 고통을 좀 덜어질까 하는 마음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입원실을 서성거렸다.


“‘똑똑’ 문을 열어주세요. 제발요”

내 심정이 그랬다.

창밖으로 해가 어슴푸레 비췄다.

병원을 찾은 지 6시간이 지났다.

진통주기는 잦아졌지만, 자궁경부는 겨우 2cm밖에 열리지 않았다.

출산 3종 굴욕 중 하나라는 관장을 한 뒤, 새우처럼 등을 굽히자 의사가 주삿바늘을 척추에 꽂았다.


통증을 완화 시켜준다는 무통 주사가 척추 사이로 들어갔다.

아이는 양수에 둥둥 뜬 채 골반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도 분만 제를 투여하자 아이가 골반 아래로 내려오려는지 골반 사이가 찢어질 듯 아파졌다.


병원을 찾은 지 12시간.

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왔지만, 그뿐이었다. 더 진전이 없었다.

더 이상 견딜힘이 나질 않았다.


 ‘선생님, 제왕절개수술을 해주세요.’

의사에게 힘겹게 제왕절개를 요구했다.

자연분만에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진통 12시간이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3월 14일 오후 2시 37분. 마취 주사를 맞고 다리에 힘이 풀려 수술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갔다.

십자로 된 차디찬 침대에 눕자 간호사가 팔과 달리 묶어버렸다.

코와 입 위에는 산소호흡기가 얹혔고 손가락 끝은 집게가 잡았다.

얼굴이 가려지자 온몸의 감각이 살아났다. 귀는 간호사의 손짓을 따라갔다. 스테인리스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자동문이 열리자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다.

척추로 차디찬 마취액이 들어와 허벅지, 종아리를 거쳐 발끝으로 퍼져갔다.


‘아파요?’

마취과 의사가 배를 꼬집었다.

마취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꼬집는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이 느껴진다고 말하자. 한 번 더 의사는 배를 꼬집고 아프냐고 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자, 수술 끝났습니다.’

허무하게도 이 말 끝에 난 깨어났다.


 ‘아이는 건강한가요?’

 출산 후 의사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16시간 진통 끝에 낳은 아이는 안아보지도 못한 채 입원실로 옮겨졌다.


3월 14일 오후 3시 7분. 나는 엄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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