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늘 억수로 욕봤데이"

그와 나의 마지막 대화

by 김예린

며칠 전, 한 달 만에 오니를 안고 요양병원을 찾았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손녀와 증손주를 반길 거라는 생각에 “할머니~”하고 불렀다. 할머니는 깊은 잠에 들었는지 인기척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비 날갯짓에도 곧 날아갈 듯 아슬아슬하게 민들레에 붙어있는 민들레 홀씨 같았다. 5분 뒤 눈을 뜬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말할 힘이 없어 말 대신 돌아가라며 연신 손을 휘휘 저었다.


“왜.. 할머니 나 온 지 5분밖에 안 됐어.”


쇠약해진 할머니는 오니에게 안 좋은 기운이 행여 붙을까 싶어 나를 밀어냈다.


“할머니 내일 나 혼자 다시 올게.”


할머니의 마음을 읽은 나는 할머니에게 약속했다. 소매 끝으로 눈을 연신 누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홀로 찾은 요양병원 주차장. 마지막으로 봤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터지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대며, 들숨 날숨을 몰아쉬었다.


‘그만 울자. 할머니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자.’


운전대를 꽈악 붙잡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모양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댔다. 슬픔이 꿀렁대며 목 위로 넘어왔다.

할머니가 계신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나는 뻘겋게 변한 눈동자에 눈이 퉁퉁 부어, 누가 봐도 한참 울다 온 사람 같았다. 할머니 모습 앞에서 ‘그만 울자’ 했던 다짐은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손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곧 날아갈 것 같아 가죽 껍데기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따뜻했다. 눈을 꼭 감고 잠들었던 할머니가 살포시 눈을 떠 나를 봤다.


"할매 내 왔다."


할머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나를 알아봤는지 눈인사했다. 내 눈은 이미 눈물이 흘러넘쳤다. 나는 휴지를 연신 툭툭 뽑아대며 눈에 갖다 댔다. 할머니 상태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가 말했다.


"할머니 괜찮으셔요. 그만 울어요."


"네."

대답은 했지만 한 번 열린 눈물샘을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명치끝이 바늘로 찌른 듯 아팠다. 손을 꼭 잡은 채 멍하니 할머니 얼굴만 바라봤다. 시계 시침은 한 시간이 지났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나 오니깐 좋지?" 할머니는 잠깐 눈을 떠 허공을 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눈을 감은 할머니 귀에 속삭인 뒤, 차가운 이마에 입맞췄다. 할머니는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그렇게 매일 한 시간씩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의 찌푸려진 미간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통의 무게는 온전히 할머니 몫이었다.


"내 오늘 억수로 욕봤데이."


나흘째 되던 날. 할머니가 입을 뗐다. 간호사는 할머니가 아침부터 각종 검사로 누워있기도 힘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고 전했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많이 아팠겠네. 고생했네."


할머니의 투정이 반가웠다.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엄지 손가락으로 할머니 손등을 비볐다.


"배고프다."


할머니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배에 가스가 가득 차 사흘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손 등 위에 꽂은 주삿바늘이 할머니의 얕은 숨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전화기."


"누구한테 전화할까?"


목소리 내뱉기가 힘든 할머니는 단축번호가 적힌 종이를 가리켰다.

‘1번 큰아들. 5번 막내딸’

전화기의 1번을 꾹 누르자. 얼마 있지 않아 큰외삼촌 목소리가 들렸다.


"외삼촌, 할머니가 목소리 듣고 싶데요. 말씀을 못하시지만 듣고 계세요."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 편한 생각만 하세요. 제가 곧…."


전화기 너머 외삼촌 목소리가 멈췄다.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잘 알겠데요. 삼촌. 또 전화드릴게요."


5번 막냇딸.

"엄마 다음 주에 갈게. 꼭 갈게."


두 사람 목소리를 듣고는 할머니는 이제 됐다며 손을 움직였다. 나는 동생에게 영상 통화를 했다. "할머니~!" 전화기 너머 동생의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할머니는 쫑알쫑알 거리며 안부를 묻는 동생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 지야, 예쁘네."


할머니가 미소 지었다. 나는 웃는 할머니 얼굴을 욕심냈다. 15개월 오니가 기울어진 미끄럼틀을 온 힘을 다해 오르고, 다시 미끄럼을 타며 깔깔거리던 동영상을 보여드렸다. 할머니가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그 찰나를 꽉 주먹 쥐고 놓지 않고 싶었다.


“할머니, 주말 이틀 쉬고 또 올게. 사랑해.”


그날이 마지막 대화였다. 할머니는 없던 힘을 짜내, 자식의 목소리를 들었고, 손녀와 증손주의 예쁜 미소를 눈에 담았다. 이틀 뒤, 새벽 나는 깊이 잠들어버린 할머니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무리 얼굴을 쓰다듬어도 할머니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할머니 얼굴을 매만지며, 나는 할머니 귀에 속삭였다.


“할머니, 예린이 왔는데. 내 얼굴만 보고 가지. 조금만 기다려주지.”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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