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린 Aug 19. 2021

마음의 틈

"자기야, 오늘 K 가 집에 가면 애들이랑 행복하지 않냐고 묻더라. 내가 집에 가면 애들이랑 놀아준다고 힘들다고 했었거든.

K가 결혼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의 환상에 젖어 있는 것 같아."


밥을 안 먹겠다는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놀이터를 터덜터덜 걸었어. 신랑이 말하더라고.


"K가 현실을 모르는구먼. 허허허."


나는 실소했지.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모두 다 한 아름에 품을 정도로 바다처럼 넓었다가, 바늘 하나 꽂을 곳 없이 좁아진다?

아이들 키울 때는 체력이 곧 마음이 되더라.

아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곧잘 울음을 터뜨리잖아.

한바탕 울고불고, 징징거리며 웅얼거리고. 몸과 마음이 덜 지칠 때는 세상 편안한 미소로 우는 아이를 안아줘.


"그랬구나, 오니 마음이 그래서 속상했어?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자."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

아이의 그 모든 걸 받아줄 마음의 틈이 없어져.

똑같은 상황 앞에서 나는 아이에게 살벌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지.


"네 마음대로 해, 울려면 저기 방에 가서 울고 와. 엄마 이야기도 안 듣는 아이랑 엄마도 대화하기 싫어. 저리 가."


알아, 나도. 알어. 나도.

입으로 내뱉으면서도 마음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내 입을 붙잡아보는데, 마음보다 입이 먼저 앞서거든.


아이를 재우고 나오는데, 시계를 보니 재우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더라?엄마가 곧 애착 인형인지라.

아이들이 잠이 들 때까지 난 아이들에게 내 양팔과 가슴을 내줘야 되거든. 방을 걸어 나오는 데 '난 언제까지 인간 애착 인형이 돼야 하나' 싶더라고.


언젠가 이런 날이 그리워질까?


침대에 누워 잠깐 오늘의 나를 되감기 해 보는데.

어찌나 권위적인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한 시간 전 놀이터 가기로 했던

아이와 약속을 부모의 권위로 깨려고 했더라고.


'체력에 따라 기분이 파도치고, 그걸 있는 그대로 아이에게 내보이다가. 아이가 내 기분을 살피며 눈치만 보는 아이가 되면 어쩌지?"


겁이 나더라.

알아,나도. 한결같은 부모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그래도 애써보자고, 견뎌보자고 마음을 다시 꼭 붙들어 맸어.


맞아.

이건 내일은 더 나은 엄마가 돼 보자는 반성 일기야.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끝자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