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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Sep 09. 2021

출장 다녀온 아빠 손에 쥐어져 있던 것

"아빠. 오늘 서울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그 말을 남기고 아빠는 대문을 닫았다.


'아빠 늦게 오나보다.'

1995년. 인생 8년 차. 서울을 가본 적은 없지만 부산에서 아주 먼 곳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6시 만화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뒤

9시 뉴스가 끝날 무렵, 대문 밖으로 아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빠 벨트에 달려있던 열쇠들이 부딪히며 쇳소리를 냈다.


'아빠다!'

곧바로 대문이 열리고 아빠가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반가운 아빠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아빠 양손을 봤다.

아빠는 종이 가방 속 있던 빵들을 주섬 주섬 꺼내, 내게 건넸다.


"와아~ 빵이다!"

단팥빵, 크림빵과 우유가 나와 동생 손에 쥐어졌다. 엄마는 아빠가 서울서 열린 노조 집회에 참여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아빠는 집행부에서 노조원들에게 허기를 달래라고 나눠 준 간식을 먹지 않고 아이들 손에 쥐어줬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빵집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먹은 빵은 슈퍼마켓에서 팔던 샤니, 기린이라고 적힌 브랜드의 보름달, 단팥빵, 카스텔라가 전부였다. 아빠가 준 동생과 나눠먹으며 그저 웃음이 났다. 그 웃음에는 반가움, 행복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내 손에 '사랑'을 쥐어주었기 때문이다.


'나 내일 서울 출장 잡혔어.'

'이렇게 급하게?'


다음 날,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난 신랑이 서울 출장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길을 나선다.


"다녀올게."

"응, 조심히 잘 다녀와."


신랑이 떠나고 한 시간 뒤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거실로 걸어왔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

"응, 아빠 너희들 잘 때 회사 갔어. 오늘 아빠가 칙칙폭폭 기차 타고 멀리 일하러 가야 해서, 일찍 나갔어."

"힝, 아빠한테 잘 가라고 인사도 못했는데."


둘째 유니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곧장 티브이에 나온 카봇 만화에 표정이 바뀌었다.

요즘 두 아이는 차가 로봇으로 바뀌는 이 만화에 푹 빠져있다. 시즌 1부터 11까지 방영된 만화 중 안 본 게 없다. 아이들 덕분에 수시로 들은 만화 주제가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헬로 헬로 나의 친구 카봇~'


카봇을 본 뒤, 어린이집 등원을 시켰다.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에 내 업무까지 보고 나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다. 시계를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할 때쯤 신랑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서울역에 장난감 매장이 있는데 카봇 시계 하나 사갈까?"

"하나만 사면 안 돼. 유니가 가지고 싶어 할걸? 두 개 사와!"

"응, 알았어."


오후 7시, 아이들이 카봇을 다 본 뒤, 저녁까지 배불리 먹었다.


'띠띠띠'

문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출장 다녀온 신랑이 돌아왔다.


"아빠 아아아아~!"

아이들은 아침에 보지 못한 아빠 얼굴을 쓱 본 뒤, 곧바로 아빠 손에 들린 종이 가방으로 시선이 향한다.


"이게 뭘까요? 오니가 좋아하는 거!"

"카봇!"

"손에 차는 거"

"카봇 시계!"


오니가 좋아서 제자리에서 방방 뛴다. 유니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예나 지금이나 출장 다녀온 아빠는 언제나 반갑다.

아빠가 손에 쥐고 온 '사랑'이 아이 손에 쥐어지는 찰나, 아이들의 얼굴이 반짝인다.  아이들은 박스를 푼 장난감을 한창 가지고 놀다, 잠자리까지 들고 온다.


장난감을 손에 꼭 쥔 채 한참을 종알대다 아이는 잠들었다.


'시간이 흘러 장난감을 낡고 고장 나도, 아빠의 사랑이 쥐어진 그 순간은 낡지 않은 채 아이 기억 속에 살아있겠지.'


아빠의 사랑을 손에 쥔 아이가 슬며시 미소 짓는다.

'좋은 꿈 꾸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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