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남이 하면 다 좋아 보인다. 스마트폰 화면 속 모델이 입은 실크 남방은 조명에 따라 은은한 광택이 났다. 옷감이 가진 광택일 뿐인데, 단지 그 뿐인데. 옷을 입은 사람이 우아해 보였다. 모델이 가진 우아함을 걸치고 싶어 냅다 구매 버튼을 눌렀다.
3일 뒤 받아 본 택배를 뜯어 얼른 윗옷을 벗어 던지고 실크 남방을 걸쳐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우아함보다 비루함에 가까워 보였다.
'인터넷 쇼핑으로 성공할 확률이 없다는 걸 알면서 왜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 걸까.' 나는 손가락을 펼쳐 애꿎은 손가락 탓만 했다.
몇 년 전 한 회의 시간.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아 어떤 주제로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회의를 시작한 뒤 20분쯤 흘렀을까? 회의실 문을 열고 회의에 늦은 참석자가 고개를 숙인 채 회의장에 들어왔다. 내 앞자리에 앉은 참석자는 눈썹만 그린 맨 얼굴에 빨간립스틱을 바른 모습이었다. 노르스름한 얼굴과 빨간의 조화. 조화로움은 매력으로 보였다. 그 뒤부터였을 테다. 내가 화장의 마무리를 종종 빨간립스틱을 짙게 입술선에 맞춰 색칠했던 게. 그런 조화로운 아름다움, 매력이 내 얼굴에도 뿜어져 나오길 바랬다.
화장 마무리는 빨간립스틱이었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 입술이 보이지 않겠지만, 자기 만족감을 위해 빨간립스틱을 선택했다. 립스틱을 곱게 바른 뒤 최종 얼굴 점검. '음, 마음에 안 들어.'
구두 신을 일이 잘 없다. 높은 구두는 지난해 아파트 옷 수거함에 다 넣어버렸다. 나는 누구보다 신발을 험하게 신는다. 3개월이면 구두 굽이 다 닿아버리고, 구두 곳곳은 스크래치투성이다. 이런 내게는 비싸고 좋은 구두보다 자주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싸구려 구두가 딱이다. 몇 개 남지 않은 구두 중 하나를 이틀 연속 신었다. 아가들 하원길. '어라?' 왼쪽 발바닥이 시원해졌다. 신발장에 고이 모셨던 구두인데, 시원하게 구두 옆이 뚫렸다. 구두 옆으로 나온 발가락이 왜 그렇게 서글퍼 보였을까.
전신 거울 앞에서 20분째 서성였다. 검은색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채 색깔과 모양이 다른 셔츠를 3벌째 갈아입었다. 둘째를 낳은 뒤 1Kg도 빠지지 않은 체중 탓에 매번 살을 가려줄 검정 바지만 찾는다. 예전에 셔츠들은 몸 선에 알맞았다. 이제는 팔뚝 살들이 셔츠에 껴, 팔 올리기가 힘들다. 내 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매번 삐져나온 살들이 아주 밉다.
최근 나는 글짓기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자'며 스스로 안아주기를 시켰다. 거울에 비친 날 보며 말한다. '네 살을 받아들여. 이게 네몸이야!'
거울 앞에서 어느 것 하나 예쁜 구석이 없어보이는 나를 잠깐 미워하게 됐다. 옷태 나지 않게 삐져나온 살들, 조화로움과 거리가 먼 빨간 입술, 옆구리가 터져버린 구두. 말만 수려한 선생은 전신 거울을 보다 뒤돌아섰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군. 나를 사랑하자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