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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마음 맑음 Aug 29. 2023

스토킹을 당하다

스토킹을 당했다.


50m 전부터 멀리서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평소 헬스장을 주 3회 다니는데, 토요일 오후 1시경, 헬스를 마친 후 항상 다니던 길로 헬스장에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15분 정도 걸어서 가는 길인데 마지막에 약간의 오르막길로 올라가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리 집이 있다.


오르막길 위쪽에서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오르막길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서로 가려고 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었으며, 서로 마주 보면서 걸어오던 상황이었다. 딱 중간에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그 편의점을 교차점으로 서로를 지나쳤다.


 '뒤통수가 따가운 괜히 느낌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원래 타인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길거리를 걸으면서 딱히 자연 말고는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성향의 내가 찝찝함을 느낄 정도면 이상하다 싶었다. 마주 보며 걸어오면서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며 속도를 점점 늦추는 느낌이 들어 약간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건너편 길로 바로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너면서 양쪽 도로에 차가 오는지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면서 살짝 남자의 위치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대략 20미터 거리쯤, 남자는 가던 길을 멈췄고, 몸은 내 쪽을 향하고 있었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주말 오후 1시 대낮이고, 가평 관광지에서 대낮에 차가 이렇게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무슨 일 있을까 싶어, 내가 빨리 걸어가면 서로 거리가 멀어질 것이니, 지나가는 행인과의 웃픈 해프닝 쯤으로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마음을 안심하려던 찰나! 갑자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20m쯤 거리에서 바로 내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면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엄청 달려왔다는 의미인데, 뭔가 점점 이상한 상황임을 짐작했다.   


걸어가던 방향이 완전히 반대였는데 남자가 방향을 돌려서, 심지어 내가 길을 건너니 같이 뒤를 따라 길을 건너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접근해 따라왔다는 의미가 아니였던가? 

  

남자가 나를 부른다. “저기요, 저기요” (이어폰을 끼고 있었으니 일부러 못 들은 척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 따라오면서 수차례) “저기요 저기요” 하면서 나를 불렀다.

 

남자: “시간 있어요?”

나: (손목을 가리키며) “시계 시간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시계가 없어서요” (최대한 무시하고 바로 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내가 상대를 안 해준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주제를 바꿔 계속 말을 걸었다. 

남자: “그거 바지예요?” (당시 운동 후 귀가 중이라 운동복인 레깅스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길가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에 기분이 확 나빴고, 내 다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내가 가는 길을 막으면서 레깅스가 바지냐고 묻는 것은 성희롱적 언행이라고 느꼈다.)

: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아주 강력하고 확고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말 걸지 마세요. 그리고 따라오지 마세요.”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렀고, 내가 가던 길을 앞에서 막으면서 다시 말을 걸었다.

남자  “그 바지 어디서 샀어요?”

나: (다시 동일하게 아주 강하고 명확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저기요, 말 걸지 말세요”

 남자는 후로도 나를 계속 따라오면서 3회 정도 동일한 말로 나를 괴롭혔. “그 바지 어디서 샀어요?”


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고, 계속 따라오는 것을 넘어서서, 나를 앞장서서 내가 가는 진로를 막아서려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집 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거의 다다랐고, 더 이상 가면 우리 집이 나오는 지점이라, 일단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지 않고 큰 길 횡단보도에서 멈춰 섰다.


남자는 이미 나를 앞질러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뒤로 돌아오는 것은 무안했는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끝난 것일까?' 남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갔겠지 싶어 안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소름 끼치는 것은 마치 내가 어디로 갈지 아는 것처럼, 마치 내 집이 어디인지 이미 아는 것처럼, 나보다 앞장서서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서, 정확히 우리 집 입구가 바로 보이는 길 건너편에 서서 나를 지켜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내 집 인지 알고 집 입구 앞에 서있었다면, 이미 전에 나를 미행 혹은 감시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내 집인 줄 모르고 우연히 서 있었다면, 내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 어느 길로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길 전체가 보이는 지점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다. 두 경우 모두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고 나는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침착함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었던 나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편과 아이는 멀리 놀러 간 상태였고, 지금 남편에게 전화를 해봤자 걱정만 시켰지 당장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고, 위기상황이라고 감지했을 때 나를 즉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경찰밖에 없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위기상황시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 분야 별로 전화번호를 미리 다 저장해 놓고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112보다 우리 집 가장 가까이 있는 동네 파출소에 신고 전화를 했다.  


스토커는 우리 집 입구 반대편 5m 정도 거리에 서서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경찰과 통화하며 배에 힘을 딱 주고 최대한 큰 소리로 “거기 경찰서죠? 여기 어디 어디인데요!”라고 말하며 남자가 들을 수 있도록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차분하면서도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당시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더 이상 길 안 쪽으로 들어가면 더 한적한 골목이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경찰서나 편의점으로 대피하는 등의) 다른 방안을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경찰과 통화를 하고 있으니 안전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집에 들어가 버렸다. 남자는 내가 집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계속 지켜보면서 내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 확인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스토커에게 내 집이 어딘지 알려줘버리는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나, 다시 뒤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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