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상실과 함께 걸어도 되는 삶
뒤늦게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걸...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다 선물이더라고
_이어령, <김지수 작가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p229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띠리릭 잠기는 도어록 소리에도 진짜 문이 잘 닫힌 게 맞는지 두세 번 손잡이를 당겨봅니다. 이제는 행여라도 열린 현관문 틈으로 나갈 녀석은 없는데도 8년간 몸에 밴 일상이란 게 그렇습니다.
여전히 주인 없는 방석 위에는 이쁜이의 사진과 입던 옷이 놓여 있고, 리드줄도 하네스도 바구니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늘 함께 걷던 산책로와 코를 킁킁대던 화단도, 공원길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마치 SF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모든 건 그대로인데 주인공만 쓱 공간이동을 해버린 듯, 늘 곁에 있던 '너'의 부재가 생생한 공간 속에서 계속 일상을 보냅니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상실이 매일 파도 물결처럼 피부로 부닥쳐 오는 것을 경험하는 건 견디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슬픔 속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
후회라는 화살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힐까 봐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시도해 보고
이전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살아나고 치유받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갑작스레 무너진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볼 만한 생을 빛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드러운 볕이 드는 날 선선하니 부는 바람이 손을 스칠 때 '아, 참 좋으다~' 말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습니다. 여전히 마음이 아리면서도, 눈물방울 같은 슬픔의 목걸이를 걸고도 기쁨의 춤을 출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걸어온 일상 조각의 모음들을
읽었던 책들을
들었던 말들을
해봤던 것들을
기록해 보았습니다.
(어떤 글에는 차마 커버 사진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기에)
누군가 이 상실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아니 이미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와 너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할 수 없는 어두운 시간을 통과할 때
저 터널 끝에 일렁이는 빛을 보고
때로는 멈추더라도 계속 걸어갈 힘을 얻길 바라면서.
잃은 것에 대한 비통함 속에서
애도의 기간을 보내면서
이쁜이와의 만남처럼
이별 또한 생의 일부라는 것을
새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너를 기억하고 맘껏 그리워하는 것 또한 이 생의 일부라는 것을.
함께 보냈던 선물 같은 시간들이 추억이 되어 내 곁에 부드럽게 내려앉을 때까지 그렇게 오늘도 걸어가 보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