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깨어난 야수 2025년 창간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by 강아름

윤재는 골방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방은 원래부터 작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벽이 가까웠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가 닿는 면적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벽지는 조금씩 밀려와 그의 어깨를 훑고, 천장은 낮아져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왜 나한테만 이럴까.'


처음엔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찾으려 하면 할수록, 벽은 더 빨리 그를 짓눌렀다. 그래서 그대로 두었다. 달리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다니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살아 돌아온 남자.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겁을 주면 인간은 공포가 전부가 되지만, 신앙이 있으면 사자굴에서도 하나님을 만난다고.


윤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다만 힘들 때마다 곱씹을 뿐이었다.

사자굴은 여전히 사자굴이었지만, 창문이 있다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벽이 닫혀도, 숨이 막혀도, 어딘가 열려 있는 곳이 있다면.


문득,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그러나 분명하게. 방 안의 공기를 가르며,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오는 소리였다. 무엇을 향한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기장의 함성인지, 공연장의 박수인지, 아니면 저녁 도시가 내는 소음인지. 다만 그 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고, 그가 있는 이 방이 무대의 뒤편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제야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두껍고 어두운 천이 창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뻗었다. 커튼을 걷는 일은 늘 위험했다. 한 번 걷고 나면, 다시 닫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윤재는 천천히 커튼을 당겼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도시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태양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건물들의 모서리를 태우고 있었고, 창문마다 불이 붙은 것처럼 반짝였다. 현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그를 조용히 달아오르게 했다.


창문을 열자, 소리는 오히려 그를 향해 조금 더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윤재는 그제야 그것이 수많은 관객의 환호라고 믿게 되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더 선명했고, 더 분명했다. 무대 뒤 어둠 속에 있던 자신이 마침내 호출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삶은 환영받은 적이 없다.
어릴 적 아버지가 때리다 지칠 때까지 웅크리며, 집에서 도망 나와 공장에서 살아가다, 도박 빚을 지고 추심자를 피해 군대에 들어가기까지.


훈련소 철제 침대와 낮은 천장, 군홧발 소리. 숨이 막혀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그는 본능처럼 커튼을 걷고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날 본 하늘도 오늘처럼 붉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아름답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 후로 그는 붉은빛이 세상을 덮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언제나 무대가 아닌, 무대 뒤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괴로울 때마다 커튼을 열었다. 그것은 집착에 가까웠다.
노을이 질 때마다 몸이 달아올랐다. 단순한 안도감이 아니었다. 구원과 쾌락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 기도와 욕망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기묘한 감각.


휴대폰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공장장의 문자. 결혼한다며? 정말 축하한다.

윤재는 답장 하지 못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그녀도, 집도, 차도, 통장도. 무대 위에 올려놓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어진 문자.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요동치는 심장.

잠시 후,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도착했다.
윤재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역시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를 걸며, 그는 생애 처음으로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끊지 않았다. 신호음 위로, 박수가 얹어졌다. 그는 창틀에 손을 올렸다. 세상이 발밑에 깔려 있다. 붉던 하늘은 조금씩 어둠에 잠식되고 있었다. 마치 무대 조명이 꺼지듯이.


윤재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태양과 하나가 되어가는 도시를 향해.

자신의 삶을 끝까지 지켜봐 준 관객들을 향해.


무대가 어두워지고 막이 내리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자리를 떴다.
윤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몸이 먼저 멈췄다.


고요해진 방 안. 익숙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벽은 더 다가오지 않고, 천장은 낮아지지 않는다.


정적을 깨는 소리가 바닥에서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잠시 숨을 고르는 소리.


“누구세요…?”


짧은 침묵.


“윤재니…?”


목소리가 떨렸다.


“윤재야… 어디니…?”


그는 불을 켰다. 그리고 조용히 휴대폰을 들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