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완성 자서전 May 15. 2021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걱정 쟁이의 미국에서 엄마 되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 티베트 속담


5년간의 망설임 끝에 맞이한 둘째 임신 사실을 확인한 지 몇 주가 지났을까, 그날은 갑자기 별것 아닌 일에 그렇게 눈물이 났었다. 아마도 호르몬 때문이었겠지? 그리고는 하혈이 시작되었고 달려간 응급실에서 유산 판정을 받았었다. 초기 유산은 흔한 일이라고 위로받았지만 그 일을 겪어내고 있는 나에게까지 흔한 일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침대 속에서 우울한 3일을 보낸 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졌다.


'5년이나 고민해서 어렵게 마음 먹었는데...둘째는 그냥 포기할까?'


그 후 다시 6개월이 흘렀고 둘째에 대한 마음을 비우려던 그때, 감사하게도 다시 아기가 찾아와 주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임신 그리고 두 번째 출산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떤 일이든 완벽한 타이밍을 찾기란 어렵고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할 수도 없지만, 임신과 출산만큼은 그러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임신 및 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온갖 걱정들과 씨름하는 엄마와 아빠들의 글로 가득하다.

시작이 쉽지 않아서였을까 둘째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걱정 #1

미국은 임신 8주가 되어서야 임신 확인을 위한 첫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점부터 4주는 지나야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아기를 기다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임신 테스트기의 두줄을 본 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고 기다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애꿎은 임신 테스트기만 잡기 십상이다. 나의 걱정은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기도 전에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병원에 갔는데 아기집이 안 보이면 어쩌지?” 등등 온갖 쓸 데 없는 걱정들로 4주 내내 불안에 떨었다. 기다림 끝에 받게 된 첫 진료에서 초음파 검사를 한 후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를 듣기까지, 그 몇 초의 적막이 어찌나 길던지.

임신 확인을 받고 난 후에도 난, 첫째 때보다 나이가 들어버린 내 몸을 의심하며 아이에 대한 걱정을 계속해야만 했다. 직전의 유산 경험 때문일 거라고 변명해본다. 그래서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자마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던 첫째 때와는 달리, 출산 직전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불안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아기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엄마보다도 훨씬 강한데 마음 약한 엄마가 믿어주지 못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아이에 대한 어리석은 의심은 그만두려고 한다.


걱정 #2

미국에서 첫 산부인과 진료를 갔을 때 느낀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큰 창으로 훤하게 드는 자연광에, 의지할 가림막 하나 없는 진료실이라니. 심지어 뷰를 보라며 창을 가리고 있던 마지막 블라인드 마저 열어주던 의사 선생님까지. 그렇게 생경한 미국 산부인과 방문기가 시작되었더랬다.

너무 자연스러운(?) 진료실 외에도 몇 가지 한국과 다른 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무래도 산후조리에 대한 개념일 것이다. 미국은 자연분만의 경우 산모와 아기만 건강하면 보통 출산 24시간 후 퇴원을 시킨다. 1박 2일 만에 퇴원하는 것도 놀랍지만 퇴원 후 갈 조리원도, 출산하자마자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미역국도 당연히 없다. 새벽 5시에 출산한 나는 그날 아침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먹었었다.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들이 걱정거리였다. 하루 만에 집으로 올만큼 회복을 할 수 있을지도,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집에서 잘 보살필 수 있을지도, 한국과 같은 산후조리 없이 내 몸을 지킬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난 24시간 마저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하루 만에 병원을 나서는 것이 과연 안전할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만약 나와 아기에게 이상이 있었다면 내가 퇴원하겠다고 졸라도 병원에서 안 보내줬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식이라 맛은 덜했지만 출산 직후 먹은 프렌치토스트도, 축하 저녁식사로 나온 식은 스테이크도 먹을만했다. 물론 산후조리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새벽 수유는 스킵하며 편안히 쉬어도 좋았겠지만, 집에서 가족끼리 하는 산후조리도 할만하다. 왠지 모를 동지애와 서로에 대한 무한한 배려로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을 미국에서 온갖 걱정과 함께 경험해본 나의 소감을 요약하자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다를지는 몰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면 나에게도 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름이 주는 불안과 불편은 순간이다. 그러니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걱정 #3

출산 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다섯 번 정도 아이와 소아과에 다녀왔는데, 매번 긴 질문 리스트를 적어 가서 의사 선생님을 괴롭히고 있다. (아직도 내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하던 돌아오는 답변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것. 아기 문제뿐만 아니라 임신 중에 내가 겪었던 다양한 불편함과 어려움들도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급하게 질문 메일을 보낸 후 답을 받기도 전에 해결되는 문제들도 많았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해서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궁금하거나 불안한 것이 생기면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정확한 의학적 진단과 조언을 받는 게 맞다고 본다. 문제는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아닐까?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이 질문이 생기면 인터넷 카페부터 검색한다. 그리고 끝없는 인터넷의 바닷속에서 걱정의 나래를 펼친다. 물론 나만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그쳐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걱정이 진짜 걱정이어야 하는지 전문가에게 물어서 빨리 확인하는 것이고, 그동안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에서 시간만큼 귀한 약은 없기 때문에.


근데 왜 난 한 달째 이어지는 아이의 황달에 또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좋을 텐데!


앞으로 본격적인 둘째 육아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걸 안다. 내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도, 미국의 의료 시스템도 믿을만하다는 것도, 많은 아이 관련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것도 다 알지만 과연 걱정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임신과 출산 과정을 통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배웠으니 앞으로는 좀 더 현명하게 에너지를 써보려고 한다. 내가 진짜로 해야 할 걱정이 무엇인지부터 가려내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표 영어 101: 파닉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