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사진 좀 보내줄래?”
한국에 계신 어머님께 메시지가 왔다. 자주 연락드려야지 하다가도 바쁜 일상에 치여 며칠 또 잊었었다. 어떤 사진을 보내드릴까 하며 사진첩을 훑어보는데 마땅한 사진이 없다. 내 눈엔 행복 가득한 아이들 사진이지만 어머님께는 달리 보일 사진들 뿐이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를 온 후 어머님의 걱정 일 순위는 바로 첫째 아이의 친구 문제였다. 특히 코로나로 유치원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부터 어머님의 걱정은 더 커져갔다. 게다가 내가 임신을 하면서 더 조심해야 했고 타주로 이사까지 오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멀어지는 동안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시간 동안 어머님께 아이들 사진을 보내드리면 늘 들어야 하는 말이 있었다.
“외로워 보인다. 얼른 친구 만들어줘.”
아이가 최고로 행복해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도,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집에서 찍은 사진이면 어머님께는 그저 친구가 없어 쓸쓸한 손주의 사진일 뿐이었다. 어머님의 걱정은 나의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했고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날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우리의 미국 생활이 실패가 될 것만 같았다.
사실 아이에게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닐뿐더러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오프라인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상황은 더 좋아지고 있었다.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아직 대인관계에 서툴기는 하지만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 수 있고 담임 선생님이 예뻐서 학교가 너무 좋다는 아이이다.
하지만 왜 어머님의 걱정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걸까? 그냥 문제없다고 말씀드리면 그만 일 텐데.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고 지내던 대로 지내면 될 텐데.
그건 바로 누구보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기길 바라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님의 말씀이 더 아프게 와닿고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당황하는 것이다.
해외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수반한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신분증명부터 집, 차, 학교, 자주 가는 병원, 마트, 공원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서 몇십 년 걸린 일을 한, 두 달 안에 완성하는 속성반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추어도 여전히 미완성의 느낌이 들 수 있는데, 마지막 퍼즐인 ‘사람’이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린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작든 크든 사회 속의 내가 정의되어야 새로운 곳에서의 삶도 진짜 삶이 된다.
학교나 회사처럼 소속된 곳이 있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본인이 소속된 곳이 없더라도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학교가 매개가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도 아이 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학부모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은 필요했지만.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여름, 미국 내 다른 주로 이사를 오게 된 우리. 미국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처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경험도 있고 문화, 인종에 대한 개방도도 높은 편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무엇보다 ISFJ형 인간인 나지만 미국에 온 이후론 놀랍도록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 다가간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인지한 사회생활의 시작인 초등학교 이후로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친구를 만들고자 노력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나 회사에서 같이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운 무리가 생기고 그 안에서 더 잘 맞는 단짝이 생겨왔었다. 하지만 가족 외에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미국에서의 나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주는 최근 미국 전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처럼 사람을 사귀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꽤 있다. 감사하게도 아이 학교를 통해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렇게 이어진 새로운 인연이 하나, 둘 늘어나고는 있지만 마음처럼 깊은 관계로 잘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은 함께 보낸 물리적 시간이 길거나,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거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모두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어서 가능했었다. 학생 때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가장 가까웠던 친구도 사회에서 걷는 길이 달라지면서 멀어지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도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나, 해외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가족 등 우리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는 가까워지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만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더 큰 어려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팬데믹.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 가까워지려면 자주 만나야 하는데 만날 때마다 아프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선 쉽지 않다. 더구나 그들이 팬데믹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잘 알 수 없으니 더 불안하다. (이곳은 학교 선생님을 포함해서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대부분 아이 학교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인데, 학교에서 끊임없이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니 인연이 닿고 나서도 더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게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는 “그래, 팬데믹만 끝나면 사람들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하며 아쉬운 마음을 다독이지만, 사실 순간순간 해외생활의 적적함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이면 이런 상황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그야말로 ‘여긴 어디, 난 누구’의 마음이 든다.
그런 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메시지라도 오면 외롭고 억울한 마음을 모두 잊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 것 같아 기쁜 마음에 웃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나에게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깨닫는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잘 어울리는 친구가 몇 집 건너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직후 반에서 확진자가 두 명이나 나와 아직 따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 친구가 지척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더 행복해질 아이와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 친구에게 “XX야, 나와. 놀자!” 할 날을 기다리며,
그날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행복을 기대하며,
“어머님, 저희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