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느꼈던 여러 감정들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답은 억울함이었다. 내가 느꼈던 억울한 감정들의 이유는 내 사고의 중심에 내가 아닌 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왔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내가 좋아.'라고 생각한다면, 친절한 행동을 한 것 자체로 나의 감정은 만족, 행복감 등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내가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감정은 상대방의 몫이 된다. 상대방이 고마움을 표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의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크고 깊은 억울함을 느끼기도 했고 그 감정에 지배되어 내가 작아지는 경험도 했다. 분명 난 일의 진행을 위해 적절한 방식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는데 상대는 (내 기준에) 이해되지 않는 분노로 답을 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단편적 사실만을 가지고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들이 상처로 남은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그들 때문이 아니다. 바로 그 상황을 아프게 받아들인 그때의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 옳은 행동을 했다면, 부정적 평가보다 더 나은 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상대방의 그런 행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정을 알 수 없는 상대방의 행동과 반응 때문에 ‘내가 진짜 잘못한 건 아닐까,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필요한 의심들로 내 자신을 작게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이처럼 불필요한 억울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나의 아이들은 나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늘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가 예상과 다르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자부심과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며칠 전 아이 학교에서 졸업앨범에 담길 반별 단체사진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촬영 며칠 전부터 전날까지 아이 반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연이어 나왔다. (반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반 전체가 격리를 하지는 않는다.) 나와 남편은 고민에 빠졌다. 단체사진을 찍으려면 친구들과 뒤섞여 서있는 상태에서 마스크를 벗어야 할 텐데, 지금처럼 반에서 확진자가 연이어 나오는 상황에서 단체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 선택일까?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선택지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로 했다. 선택지는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옵션들로 1차 선택이 된 것들이었으니 100% 아이의 선택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요즘 반에서 아픈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 내일 단체사진을 찍으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엄마, 아빠는 좀 걱정이 되네. 넌 어때?”
“바이러스 때문에?”
“응,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찍거나 아니면 다음번에 같이 찍는 걸로 하면 어떨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그럼 난 마스크 쓰고 찍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럼 엄마가 선생님께 미리 말씀 드려놓을게. 근데 친구들이 왜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잖아? 어떻게 설명해줄까?”
“난 나를 보호하는 거야라고 말해줄 거야.”
그리고 아들과 나는 아들의 즐거운 마음과 사랑스러운 성격이 마스크를 넘어 사진에 잘 담기도록 여러 포즈를 연습하며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이는 사진사 아저씨가 손을 올리지 못하게 해서 멋진 포즈는 못했지만 눈으로 활짝 웃었다고 한다.
졸업앨범이 나왔을 때 홀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단체사진 속 자신을 보며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늘 그렇듯 자신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지키는 일이니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아니면 남과 다른 모습을 인지하고 주눅이 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아이에게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담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넌 늘 네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과 행동을 하면 돼. 그리고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 없어. 만약 너의 생각과 행동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음 아파하지 마. 네가 틀린 게 아니라 그 사람들과 다를 뿐이니까. 네가 너의 선택과 행동에 당당하다면 그걸로 된 거야. 언제나 남이 아닌 너에게 당당한 단단한 네가 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