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예라 Dec 26. 2022

고통의 틈새

Photo by Szilvia Basso on Unsplash


생각해보면 인생이 마냥 100퍼센트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사이사이 행복했고, 보람을 느꼈고, 감사했다. 분명 그랬다. 그러나 힘들 때 종종 그런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 인생은 왜 항상 이모냥이냐!" 하는 원망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거기에 이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고 말 것이라 속삭이는 고약한 악마에게 홀랑 마음이라도 빼앗긴다면 우울증이 분명 생기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쉴 새 없이 몰아닥치던 고난과 고생사이에 스르르 빈 공간이 생기면 우리는 틈새 행복을 재빨리 낚아채서 누리고 감사하고 즐겨야 한다.


지난 목요일 코로나 확진된 제부가 안방에 격리되어 있는 중에 조카가 중이염, 여동생은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생후 7개월이 된 조카가 약을 먹자마자 분유를 와락 토하는 바람에 이불이며 옷이며 다 젖었다고, 밤새 울고 보채서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세 식구나 나란히 아파서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특히 여동생이 얼마나 힘들지 안 봐도 예상이 되었다. 동생과 조카 걱정이 되어 참을 수 없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동생의 집에 다녀왔다.


단숨에 달려가서 콧물 줄줄 흘리고 있는 아기를 꽉 안아주고, 동요 틀어놓고 율동하며 놀아주고, 약도 먹여주고,  얼굴이 반쪽 된 동생이랑 같이 밥도 먹었다. 동생과 조카가 환하게 깔깔 웃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손을 뽀독뽀독 씻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독박육아와 남편 병간호라는 힘든 시간 중 언니와의 몇 시간이 여동생에게는 잠깐의 휴가처럼 느껴지길 바란다. 그래서 다시 딸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고 남편을 위한 죽을 끓일 힘을 얻길 바란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고, 일하고, 공부하면서 이러다 혹시 피곤해서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할 만큼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사이사이 잠도 푹 잤고, 맛있는 것을 먹었고,  두 아이들의 재롱에 크게 웃었고, 심지어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삶이 참 고되고 힘들었지만 죽지 않고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수많은 어려움 사이에 잠깐씩 나타난 여유를 꼬박꼬박 챙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삶이 힘들기만 하다는 과장된 투정을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주어진 삶을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삶은 이런 내가 가여워서, 혹은 기특해서 종종 나에게 뜻하지 않는 여유와 선물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울상과 죽을상보다는 이왕이면 해처럼 밝은 얼굴로 살아가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