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1111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숨 쉬고 있었어요.
바람의 춤, 빗방울의 노래, 사람들의 언어, 새의 울림…
그 소리는 서로 부딪히며 세상을 반짝였어요.
소리의 틈, 잠시 멎는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한 존재가 다녀갔어요.
그의 이름은…
아니, 사실은 아무 이름도 없었어요.
아무도 그를 불러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말이 흘러간 자리
눈물 뒤에 남은 고요
누군가의 마음 가장자리에서 머무르기도 했지요.
그는 세상을 지켜봤어요.
사람들은 더 크게 말하려 애썼고,
더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 서로를 밀어냈어요.
그러면 그 빈자리에 그가 살짝 내려앉았어요.
부서진 조각을 다정히 감싸안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한 아이의 눈동자가 그를 비추었어요.
아이는 조용하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아이를 보고 수군거렸어요.
“참, 이상하게 조용한 애야.”
하지만 그는 알았어요.
그 아이의 안에 너무나도 많은 소리가 숨어 있다는 걸.
슬픔, 두려움, 그리고 아직 자라지 못한 소리.
침묵은 살며시 다가가 속삭였어요.
“말하지 않아도, 나는 듣고 있어.”
그날 밤, 아이는 처음으로 깊은 잠에 들었어요.
그리고 꿈속에서 그를 만났어요.
깊고 푸른 안개 속, 온몸이 공기처럼 투명한 존재가 아이 앞에 서 있었어요.
“넌 누구야?”
“이름이 없어. 아무도 불러준 적이 없거든.”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왜 아무도 널 부르지 않아?"
"글쎄… 나를 부르면 세상이 잠시 멎거든. 사람들은 그걸 불편한 고요라고 부르지."
“불편한 고요” 아이는 천천히 되뇌었어요. “그럼, 사람들은 너를 싫어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대신 잔잔하게 일렁였어요.
그 파동은 아이의 가슴안으로 스며들었어요.
“싫어하진 않아. 다만… 오래 견디질 못해.” 그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멈춘 시간의 떨림이었어요.
“고요 속에서 자기 마음이 들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아."
“누구한테?” 아이가 조용히 물었어요.
침묵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주 낮은 숨결로 답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자기 속의 소리를 듣기 전에 세상의 소음을 켜버려. 그러면 나를 잊어버려.
소리가 멎으면, 그제야 자기 안쪽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아이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췄어요.
바람도, 물소리도, 심지어 자신의 숨소리마저 사라졌지요.
대신 아주 낯선 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니, 소리라기보다는 안쪽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진동 같았어요.
처음엔 그것이 무서웠어요.
“이게… 내 목소리야?”
아이가 속삭였지만, 목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어요.
무겁게 눌러놓았던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그 무게만큼 크게 진동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
끝내 삼킨 울음
스스로에게 건넨 ‘괜찮아’ 속에 숨어 있던 외로움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더니
아주 맑고 고요한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아이의 가슴에 았어요.
침묵이 다시 속삭였어요.
“그게 바로 너야.
세상의 중심은 늘 시끄럽지만,
진짜 너는 그 바깥의 고요에서 피어나.”
아이는 눈을 감았어요.
은은하게 푸른빛의 새가 태어났어요.
새는 아이의 가슴 속에서 날개를 폈어요.
날갯짓이 일렁일 때마다 세상의 가장자리가 반짝였어요.
소리와 소리 사이
멈춘 숨결의 틈에서
작은 새가 세상을 어루만졌어요.
사람들이 몰랐던 고요가
이제는 한 생명의 형태로 숨 쉬고 있었어요.
그는 미소를 지었어요.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미소가 번졌어요.
빛과 어둠이 맞닿은 가장자리에서 새벽이 피어났어요.
푸른 새가 날아올랐어요.
그는 한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세상 모든 숨 속으로 흩어졌어요.
세상은 아주 잠시, 완벽한 침묵에 잠겼어요.
이제 그는 어디에나 있어요.
그 고요 속에서
모든 존재가
한 번 더 깊게
숨을 쉬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