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보내는 마음

밖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1125

by beautiful wisdom

아이는 요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자주 들었어요.

학교에서 발표를 할 때도, 친구들이 장난칠 때도, 아무 말하지 못한 채 가슴이 콕콕 찌르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마다, 주머니 속에 접어 넣어 두었던 작은 쪽지를 꺼내 읽곤 했어요.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너는 참 재밌어.”

“그날 도와줘서 기뻤어.”

그건 예전에 누군가 아이에게 건네준 말들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이 말들마저도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날 밤, 아이는 긴 한숨을 쉬었어요.

“나는 왜 자꾸… 나만 잘못하는 것 같을까.”

그때, 방바닥에 길게 누운 아이의 그림자가 흔들렸어요.

“그건…” 그림자가 조용히 말했어요,

“너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만 알고 있는 이유 때문이야.”

아이는 깜짝 놀랐어요.

그림자는 늘 아이와 가까이 있지만 말을 건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너는 요즘 모든 걸 네 안에서만 해결하려 하잖아.” 그림자가 말했어요,

“그래서 네가 점점 작아지는 거야. 가끔은 네 마음을 잠시 밖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어때?”

그림자는 문으로 걸어갔어요. 그리고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어요.

밤공기가 차갑게 닿았어요.

“어디 가는 거야?” 아이가 물었어요.

“너를 한 번쯤 다른 빛으로 비춰보자.”



길모퉁이를 돌자

나뭇잎들이 사락거리며 아이를 스쳐 지나갔어요.

“여기에 네 걱정을 잠깐 두고 가보는 건 어때?”

그림자가 말하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입가에 가져갔어요.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오늘 선생님이 한 말이 너무 무서웠어…”

바람이 스치며 그 말을 부드럽게 가져갔어요.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돌멩이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요.



조금 더 걸어가자

달 빛 아래 강물이 흐르며 조용히 빛나고 있었어요.

“여기엔 네 얼굴을 한번 두고 가보자.”

아이는 웅덩이 위에 몸을 숙였어요.

물결이 일렁이며 아이의 얼굴을 비췄어요.

“저건… 내가 아닌 것 같아.”

아이가 속삭였어요.

“그렇지. 네가 ‘잘못하고 있다’는 표정만을 오래 본 탓이야.

너는 원래 저렇게 잘 웃는 아이였어.”

물속의 얼굴은

오래전 누군가가 "네 웃는 모습이 좋아”라고 말해줬던

그때의 아이와 닮아 있었어요.



공원 벤치 아래

노란 낙엽 한 장이 빙그르르 팔랑이며 땅으로 착지했어요.

그림자가 말했어요.

“여긴 네 고집을 맡기기 좋은 곳이야.”

“내 고집?”

"버리면서 진짜 색이 드러나는 계절이잖아, 가을은.

‘나는 항상 틀려’, ‘나는 작은 존재야’ 그런 말들 말이야.”

아이는 낙엽 위에 손을 얹었어요.

그리고 조용히 말했어요.

“… 나는 그렇게까지 작은 존재는 아닐지도 몰라.”

바람이 불자 공원 내 나무가 흔들렸어요.

아이는 고개를 들어 보았어요.

빨갛고 노랗게

진짜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나무들의 노래가 마음속에서 사르르 울려 퍼졌어요.



세 가지를 모두 내려놓고 나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어요.

바람이 또 한 번 아이의 뺨을 스쳤어요.

이번에는 아까처럼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바람은 마치

“걱정 너무 오래 쥐고 있지 마”

라고 말하는 듯 부드러웠지요.


물웅덩이는

아이의 얼굴을 더 또렷하게 비추었어요.

흐려져 있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는 걸

아이 자신도 느꼈어요.


낙엽은 아이가 손을 떼려 하자

바스락— 하고 작은 소리를 냈어요.

아이가 놓고 간 무거움을

가볍게 품어낸 듯

마치 “그래, 잘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이 어둠에서 푸른빛으로 띠며 변하는 중이었어요.

그 변화가,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움직이던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 정말… 나는 가만히 서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아이 옆에서

조용히 같은 방향으로 길게 드리워졌을 뿐이었어요.


아이는 스스로 첫걸음을 내디뎠어요.

그림자는 말없이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갔어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발걸음으로.

그 순간, 아이는 아주 작은 속삭임을 들었어요.

“오늘도 나와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그건 그림자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아이 자신의 목소리였는지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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