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게

by beautiful wisdom

어느새 이렇게 깜깜해졌네. 벌써 밤이야.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해가 짧아서 이렇게 금방 밤이 내리잖아. 그래도 나는 뜨거운 숨을 내쉬는 여름보단 코끝과 손끝이 차가워지는 겨울을 좋아해. 내쉬는 숨에 몽글몽글한 구름 같은 입김이 만들어지는 겨울을. 내 온기를 담아 전하지 못한 말들이 공기 중에 퍼지는 것 같잖아.


너는 어떤 계절의 냄새를 좋아해? 다른 계절들도 떠올려보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냄새가 있지만, 나는 겨울 냄새가 날카롭고 맑아서 좋아. 밖을 나서자마자 내 얼굴에 닿는, 움츠러들 만큼 차가운 그 공기가 아찔하지만, 들이쉬는 숨에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고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어.


겨울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눈이 내리는 계절이기 때문이야. 피는 시기가 정해진 꽃들이 아름다운 이유와 같아. 지고 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기에 볼 수 있는 그 시간이 소중하듯. 녹으면 사라져 버리니까. 영화 <겨울왕국>에 올라프가 소중하듯이.


눈이 내리는 날의 내 소중한 추억을 하나 들려줄까?

아마도 내가 다섯 살, 혹은 여섯 살일 때일 거야. 내가 살던 아랫지방에서는 매년 겨울은 맞아도 눈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어. 그날 아침도 나는 포근한 이불에 폭- 쌓여 한참 단잠에 빠져있었는데, 누가 내 볼을 톡톡 건드렸어. 그러고는 왼쪽 귀에다 "가혜야, 밖에 눈 내리네" 하며 속삭이는 거야.


잠결에 속삭이는 소리를 어떻게 듣느냐고? 내가 어릴 때 잠귀가 엄청나게 밝았거든.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 포장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고, 처음 알았지. 산타는 엄마 아빠라는 걸. 그래도 동생에겐 말하지 않기로 했어.


눈이 내린다며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우리 엄마였어. 동생은 어리기도 했고, 옆에서 자고 있으니 작은 목소리로 나만 깨우신 거야. 밤새 꼬박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동네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나 봐.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을 한 손으로 비비며, 다른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베란다로 나갔어. 말 그대로 하얀 세상이었어. 햇볕에 반사된 하얀 눈이 반짝반짝했고, 보이지 않는 조명이 켜진 듯 환했어. 어린 나는 내복을 입고 있었고, 베란다라 약간 쌀쌀했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어. 카디건을 입은 엄마가 뒤에서 나를 품에 쏙- 넣어 안아주셨고, 처음 보는 풍경에 추운 줄도 몰랐거든.


그래서 난 눈이 오는 날에는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해.

눈이 내린다고, 이 아름다운 것을 너도 보고 있느냐고. 나는 네 생각을 한다는 말을 숨겨서 말이야.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어?


나는 바라게 돼. 네가 편하게 잠들고 잘 자면 좋겠다고.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처럼, 네가 잠든 사이에 나는 눈송이가 되어 가볍고도 무겁게 내리는 꿈을 꿔. 하얀 고요함으로 뒤덮인 세상을 본 네 입가에 크고 맑은 미소가 오래 머물길 바라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고요해진 세상에 귀를 기울여 봐.

타탁- 타다닥.

눈송이가 땅에 닿는 소리는 마치 장작이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볍게 내리는 빗소리처럼 들리기도 해.


아무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눈 쌓인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봐.

이미 많은 사람이 지나간 길, 녹았다 얼어 지저분해진 길이 미끄럽지 않게 네가 가는 그 길에 나는 소록소록 눈으로 내릴게.


걷다 지치면 고개를 들어 눈 내린 경치를 두 눈에 가득 담아보고, 네 곁에 내리는 눈을 보며 한 번 웃어줘.


눈사람을 만들어 봐.

내일이면 햇볕에 녹아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또 눈이 내린다면 또 만들자.


눈이 다 녹아 봄이 오면, 눈사람이 녹은 자리엔 꽃이 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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