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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Aug 21. 2016

[Book] 내 삶 한가운데의 죽음에 관하여.

<흰> 20160525 한강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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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의 소설 <흰> 은 형식 면에서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입니다. 소설이라기에는 일기, 수필, 산문, 독백. 그 중간의 어디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앞뒤없이 중얼중얼 이야기를 늘어놓는 화자를 따라 애써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희미한 서사가 가까스로 눈 앞에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태어나서 두 시간을 살다 간 나의 언니, 내 어머니의 첫 아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서도 볼 수 있었던 한강 특유의 소슬한 느낌, 먹먹한 슬픔, 외로움, 서늘함,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합니다. 


지난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던 중이었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것이 이 죽음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자랐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중략)

지난봄 그 녹음실에서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릴 때 기르던 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겨울 죽은 백구는 진돗개의 피가 절반 섞여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고 했다. 다정하게 함께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이 남아 있지만, 살아 있었던 때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없다. 선명한 건 오직 죽던 날 아침의 기억뿐이다. 하얀 털, 까만 눈, 아직 축축한 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손을 뻗어 개의 목과 등을 쓰다듬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흰> p.22 "달떡" 中


이 소설은 작가 개인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작가에게는 두 시간을 살다 간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슬픔에 유독 가까운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죽은 언니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하고 싶었지만 쉽게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르샤에서 수 달을 머물며 글을 쓸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이 소설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설인 동시에 작가 개인의 일기와도 같습니다.


태어나 두 시간 동안 살아 있었다는 어머니의 첫 아기가 만일 나를 이따금 찾아와 함께 있었다면, 나로서는 그걸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이에게는 언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으니까. 한 시간 동안 눈을 열고 어머니 쪽을 바라보았다고 했지만, 아직 시신경이 깨어나지 않아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목소리만을 들었을 것이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알아들을 수 없었을 그 말이 그이가 들은 유일한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확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그이가 나에게 때로 찾아 왔었는지, 잠시 내 이마와 눈언저리에 머물렀었는지.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어떤 감각과 막연한 감정 가운데, 모르는 사이 그이로부터 건너온 것들이 있었는지. 어둑한 방에 누워 추위를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해독할 수 없는 사랑과 고통의 목소리를 향해, 희끗한 빛과 체온이 있는 쪽을 향해, 어둠 속에서 나도 그렇게 눈을 뜨고 바라봤던 건지도 모른다.

- <흰> p. 36 "빛이 있는 쪽" 中


책에는 이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나직하고 묵직한, 서늘하고 슬픈 독백이 주욱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두 시간을 살다 죽은 아기가 있고, 달떡같은 아기를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있고, 죽은 언니의 자리에 태어나 슬픔을 곁에 두고 자란 작가가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의 작가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신의 감각과 삶을 죽은 언니에게 빌려주어 스스로 이야기하게 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책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조금 얇은 두께의 책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지만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와 비슷한, 가슴 깊은 곳에 먹먹한 무언가를 느끼며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은 "한동안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결국 저는 책의 맨 앞장부터 다시 펼쳤습니다. 감히 함부로 읽을 수 없고, 함부로 쓸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출근을 수 시간 앞둔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의 새벽 한시 반, 비슷한 두께의 노트를 펼쳐 놓고 소설 <흰>을 처음부터 또박또박 베껴쓰기 시작했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곰곰이 곱씹어가며 필사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부족하나마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흰> p.128 "작별" 中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소녀처럼 웃으며 말합니다. 한 작품이 끝나면 매번, 이 다음번에는 좀 더 밝은 느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지만 쓰다보면 어느새 슬픔에 가까워져 있더라고. 소설 <흰> 역시 '하얀'이 아닌 '흰', 죽음과 슬픔의 이미지가 가득한 소설이지만, 사실 그 어둠을 이야기하며 작가는 빛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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