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12.11(화) / 교대 입학 289일째.
교육학 수업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다. 문헌조사가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현직 교사나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해야 했다. 우리 조는 '죽음교육'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의 발표를 맡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죽음교육을 하기는 하는 걸까, 막막함을 안고 무작정 인터넷을 검색했다. 죽음교육의 검색결과는 대부분 성인, 특히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설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올해 3월 경향신문의 기사 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초등학교에서 죽음교육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존재했다. 우리는 기사 내용만 보고, 그 선생님께서 근무 중인 학교 행정실로 무작정 전화를 해서 선생님과 연락을 시도했다.
가는 날이 장날. 하필 우리가 연락을 드리기 전날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KBS스페셜 〈죽음이 삶에 답하다〉 가 방영되었고, 해당 학교에는 선생님을 찾는 연락이 빗발쳤다고 한다. “말씀은 전하겠지만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실지는 모르겠다”는 행정실의 답변에 우리는 좌절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고작 수업 과제를 하겠다는 대학생들을 만나주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선생님은 바쁘신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어주시기로 약속했고,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주셨다. 몇 년 뒤면 후배교사가 될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시고, 이를 통해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시고자 하는 것 같았다.
어렵게 만난 선생님은, 신문기사 한 자락만 보고 무대뽀로 연락한 대학생들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다. 단조로운 학교생활 중에 드물게 만난 보석같은 선배교사였다. 기한에 쫓겨 ‘과제’의 일환으로 선생님을 대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선생님과 우리는 약속한 2시간을 훨씬 넘겨서 세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그림책을 활용한 죽음교육’이라는 독특한 교육을 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글쓰기 등의 관련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행위조차 부정하고 불길하게 여긴다. 그러나 임경희 선생님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과 함께 그림책에 등장하는 죽음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곧 ‘죽음에 직면’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랐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그림책의 내용은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가족의 죽음과 애도의 과정, 자연의 섭리로서 피할 수 없는 죽음, 심지어 자살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책도 있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절대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꺼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담담하고 아름답고 시(詩)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평소에도 책을 잔뜩 껴안고 사는 나는 선생님께 소개받은 그림책을 모두 사서 내 책장에 꽂아놓고, 잠이 오지 않는 심란한 밤에 꺼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임경희 선생님과의 짧고 강렬한 만남은 나의 태도를 바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냥 과제로써,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는 태도였던 우리는 선생님의 강한 에너지에 이끌려 ‘죽음교육’이라는 주제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독특한 주제에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죽음을 가운데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특별한 연대감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주말에 조원들과 모여서 꾸역꾸역(?) 과제를 하다가, 죽음에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가 꺼내어지기도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결국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슬프고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은 후, 소중한 여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일까?
임경희 선생님은 본인이 운영 중인 개인 블로그도 소개해주셨다. 그 곳에는 교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아주 긴 교직생활동안 무뎌질법도 한데, 하루하루 감사하고, 느끼고,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또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선생님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꿈꾸는 교사의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선생님에게서 '좋은 교사' 이상의 무언가를 보았다. 죽음의 여정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한 인간으로서, 또 주변의 죽음을 보고 겪으며 슬퍼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단단한 신념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평화롭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교대 생활, 통과의례처럼 동기들과 함께 치르는 임용고사, 그리고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으로서의 교사. 죽음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평탄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정해진 길’만을 따라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대 1학년 생활 중에 선생님을 만나고 죽음교육을 만난 일은, 예비교사로서 나의 마음가짐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현직에 나가서, 매일의 과업에 떠밀려 마음이 너무 힘든 때가 찾아온다면, 지금 쓴 이 글을 다시 돌아보고 이 그림책들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되기는 쉬울지 몰라도,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역시 정말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