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utiPo Jun 20. 2016

[Book] 단내나는 그들의 삶에 박수를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20130311 송호근 作


어쩌면 학자의 연구는 자꾸만 자기 자신의 문제를 맴돌게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자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평생을 바쳐 학문에 파고들게 되는 것 아닐까요? 송호근 교수님의 책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역시 그러합니다.


연구 논문이라기에는 감상적이고
에세이라기에는 학술적인,
사회학자의 자기고백적 회고록.


베이비부머인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같은 또래들이 살아온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별다른 사회학적 분석 도구를 들이댈 것도 없이 그것들을 날 것 그대로 펼쳐놓았습니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사회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저자의 감성적인 언어로 풀어낸 저자와 인터뷰이들의 진솔하고 담담한 인생 고백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힌다는 것입니다. 학술적 목적이 아니라 같은 베이비부머들이 읽기를 바라고 쓴 응원의 메시지이자 젊은 우리들이 읽고서 부모님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쓴 호소의 글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1955년에서 1963년생, 한국 나이로는 올해 52세에서 60세까지의 베이비부머들을 저자는 '가교세대(bridging generation)' 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부모님과 자식을 위해 '이 한몸 뉘여 다리가 되는' 희생의 세대이자, 역사적으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사이를 잇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며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한편, 위로는 백세시대 부모님 봉양에 아래로는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치여 살고 있습니다. '억'소리나는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과 결혼자금, 그리고 늙으신 부모님 부양까지. 아래위로 퍼주고 나면 정작 그들에게 남는 것은 실버푸어(Silver poor) 뿐입니다. 노후대비를 할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수입없이 살아야 할 시간은 점점 길어지는데,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에 대한 준비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주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이 세상에서 자기 한 몸 건사하면 다행이거니와, 자녀 수가 적다보니 젊은 부부 둘이서 양가 부모님 네명을 부양하는 형세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
왜 각자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는 이런 힘든 모양새가 되어버렸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슬프고 먹먹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책은 정책적인 면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그 부분은 후속 연구로 미루어두고, 이번 책은 "연대감 확인을 통한 공감과 위로"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책의 마지막 부분을 할애하여 베이비부머들에게 개인적 차원에서의 적응 방법을 안내합니다.


아내에게서 독립하라, 취와 벽을 개발하라, 인간관계를 정비하라, 등등 친절한 그 '매뉴얼'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외람되게도 제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으신 그 분들이 가엾고 귀엽게 보였습니다.


그래, 평생을 돈과 직장과 '누구누구 뒷바라지'가 전부인 줄 알고 사신 분들이니, 예상치 못한 은퇴로 얻은 원치 않은 자유를 현명하게 활용하려면,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려면 이런 일종의 훈련, 공부가 필요하시겠구나.


저희 아버지는 61년생, 어머니는 65년생으로 베이비부머 끝자락에 해당합니다. 2남2녀의 둘째딸인 저희 엄마는 시골에서 꽤 똑똑한 수재였다고 합니다. 성적도 좋고 욕심도 많아서 대학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포기하고 취업을 해야 했고, 그것이 아직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에게 대학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줄곧 하셨습니다. 이미 스물 몇 해 전 일인데도 말이지요. 아버지도 가세가 기울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핫도그 노점상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두분 다 상고를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취직하셔서 사내커플로 결혼에 이르렀고, 그 후에는 그 유명한 IMF에 직격탄을 맞으시고서도 저희 삼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고생을 얼마나 하셨는지.


저는 2013년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서 우연히 이 책을 읽었습니다. 책 곳곳에서 부모님의 인생이 보여서, 읽는 내내 그분들의 고민과 애환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그 해 어버이날에는 처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시작하는, 으레 매년 쓰던 그런 편지가 아니라 이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신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고 돌아보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내 세대의 합리적, 개인적 가치관에 길들여진 나의 잣대로 불평하고 비판하던 당신들의 어떤 점들이, 사실은 당신들의 인생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의 편지와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Book]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