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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un 26. 2016

[Book]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 20140519 한강 作


잘 알려진 소재일수록 그것을 작품화 하기 조심스럽기 마련입니다. 자칫 이미 세상에 있는 많은 작품들과 비슷한 진부한 작품이 되기도 쉽거니와, 진부함을 피하려다가 본래의 사건이나 인물을 왜곡하게 되는 위험에 빠지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참 궁금했습니다. <채식주의자>에서의 강렬하고 거친, 날 것 그대로를 활자로 우겨넣은 것 같은 작가 한강의 색채가, 恨이나 魂 이라는 글자로 표현해야 할 것 같던 영적인 느낌이, 과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가장 '핫'한 소재와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을까.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난 주말 오후에 느지막히 첫 장을 펼치고선, 숨쉴 틈도 없이 마지막장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침대에 철푸덕 엎드려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저는 허리를 꽂꽂하게 세우고 인상을 찌푸리며 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그 아름답고 절절하고 잔인한 이야기를, 동호를, 선주를, 은숙을, 진수를 숨가쁘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라기엔 그냥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어느 누구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이야기입니다. 그날 그 곳에서 벌어진 일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소설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무엇을 더하고 뺄 필요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처음 든 생각.

내가 감히 '리뷰'를 할 수 없는 책이겠구나.


그들의 그 비현실적이고 묵직한 슬픔에 대해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인함에 대해서, 1980년 5월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 이 아니라 방사능 피해처럼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현재진행형'인 그 슬픔에 대해서,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무슨 말을 이러쿵 저러쿵 떠들 수 있을까.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소년이 온다> p. 102 中


부끄러웠습니다. 교과서에서 빼놓지 않고 배웠던 사건임에도, 한 번도 그 잔인함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 5월 18일은 저에게는 그냥 여러 국경일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약간의 숙연함과 감사함을 가지고 보내려고 '노력'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 정부의 무력 진압 -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 활자로 써놓으니 얼마나 간단한가요. 죽은 지식이었고 죽은 감정이었습니다. 그냥 교실에 앉아 주입된, 의무적인 슬픔, 의무적인 감사함.


소설은 채식주의와 비슷하게,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번갈아 서술합니다. 도청에서 이름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남아 밤과 아침을 지키던 동호, 은숙, 선주, 진수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갑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 왜 도망치지 않았냐"는 질문에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고.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너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낸다.

군대가 들어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마침내 다 떼어냈다. 너는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친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엄마를,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이 가로막는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대요 엄마.

행렬 사이로 너와 눈을 맞추려고 엄마가 깨금발을 디딘다. 우는 아이처럼 힘껏 찡그린 그녀의 이마를 향해 너는 목소리를 높인다.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그녀가 말한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같이 저녁밥 묵게.

- <소년이 온다> p. 42 中


마치 총을 들고 있는 것 자체로 죽음을 막아줄 부적이라도 되는 듯이, 앳된 얼굴로 총을 들고도 결국 한 발도 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들도 다 뒤로 하고선 결연하고 냉정하고 용감무쌍하고 치열하게 싸운 '영웅'들만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 대학생 젊은이들이, 그냥 내 친구가 그렇게 죽어갔으니까, 지금 이것이 잘못되었으니까, 이렇게라도 나의 양심과 친구의 죽음을 지키고 싶으니까, 라는 가장 단순하고 솔직한 생각으로 하나 둘 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만연한 무력감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느끼면서도 '먹고사니즘'의 뒤에 숨어서, 에이 난 그냥 평범한 소시민인데 뭐, 그런건 집도 절도 버리고 그런 일에만 매진하는 소수의 영웅들이나 할 수 있는거지, 하는 그 핑계가 부끄럽습니다. 그런 내 자신을 너무나 부끄럽게 하는 책입니다.


누나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 죽은 소년,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시신 수습을 돕게 된 소년,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스러져간 소년, 부상자에게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기다리던 많은 시민들, '살고싶다'와 '부끄럽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 우연히 살아남은, 또는 우연히 죽음을 맞이한 많은 사람들. 나 혼자 살아남은 것이 끝끝내 부끄러워 가슴에 상처를 묻고 사는 사람들, 검열되어 검은 줄이 박박 그어진 연극 대사들을 입모양으로 묵음 처리하면서까지 무대에 올려 소리없는 저항을 하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소수의 특별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영웅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영웅으로 기억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작가 한강은, 열세살에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첩에서 인간의 잔인함 목도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광주 민주화운동은 작가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잔인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문, 이 모든 것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소재'로서 기능합니다. 그 사건이 사소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잔인함과 존엄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에, 그 사건이 일종의 증거로서 기능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소년이 온다> p. 134 中


사실 소설 <채식주의자>의 급진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소년이 온다>를 통해 거꾸로 <채식주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너 그러다 죽어!"라는 언니의 말에 "왜 죽으면 안돼?"라고 반문하던 영혜의 질문이, 돌연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이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동물과 같은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렇다면 인간이 과연 존엄한가, 왜 세상은 존엄하지 않은 인간들로 가득한가, 그 가운데에서 죽음으로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슬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처절하고 사실적인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다른 함의가 보이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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