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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ul 17. 2017

[웹툰]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는 것

<이토록 보통의_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by carrot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41199


포털사이트 DAUM에 연재 중인 웹툰 <이토록 보통의> 는 여러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식으로 연재합니다. 작가 Carrot 은 이 작품의 예고편에서 '보통 사람들의 사랑'에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장애물'을 놓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우선 그림체가 독특합니다. 어딘지 조금은 엉성한 윤곽선, 그리고 유난히 알록달록한 색감이 더해져 마치 그림이 물에 젖어 번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면서 묘한 슬픔을 자아내는 독특한 그림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보통의> 첫 에피소드인 <무슨말을해도>도 좋았지만, 저는 두 번째 에피소드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를 보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 회 새로 업로드가 될 때마다, 몇 주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부 유료 결제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P )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는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여자 P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은기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밤 하늘에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며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이루도록 기도합니다. 그 곁을 지키는 남자는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녀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문제로 크게 다투게 됩니다.


꿈과 사랑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는, 영화 <라라랜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 웹툰이 영화 <라라랜드>보다 더 심오하고 다차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꿈과 사랑의 대립, 여기까지는 작가가 예고편에서 언급했듯이 '보통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장애물'이 등장하지요. 그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반전의 장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 '일반적이지 않은 장애물'을 꼭 웹툰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보통의 사랑'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공감능력과, '일반적이지 않은 장애물'에서 돋보이는 작가의 한계없는 상상력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방식도 눈물나게 슬프고 아름답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사 하나 하나가, 오래 고민하고 써내려간 시처럼 가슴을 묵직하게 울립니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작품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수많은 물음을 남깁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언젠가 연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데, 너는 나보다 너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왠일인지,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의 결말을 보고서, 저는 오래 전 연인의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잘 살다가도 갑자기
세상이 너무 무섭고
외롭고, 불안할 때.

우주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지구가 있고,
지구보다 훨씬 큰 행성이 있고,
또 그것과 상대도 안되는 크기의 태양이 있고,
은하수가 있고...

그런 은하수가 이 우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중략)

우주를 가만 보고 있으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나 걱정들이 무척 사소하고, 보잘 것 없게 느껴져.
그리고 그게 꽤나 위로가 돼.

 - <이토록 보통의_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1)> 中













아래는 웹툰 <이토록 보통의_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에 대한 스포일러성 글입니다.







저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함정(?)에 모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여자의 꿈에 반대하는 은기가 미웠고, 그 다음에는 우주로 떠나지 않은 P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은기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됐지요. 그리고 나서는 P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복제로봇을 만들면서까지 우주로 굳이 굳이 떠났어야 했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말을 모두 본 후에는 펑펑 울었습니다.


누가 진짜인가, 은기가 그동안 사랑한 것은 로봇P인가 진짜 P인가, 누군가를 '그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은 둘째치고요. 방향은 빗나갔을지언정, 깊이 깊이 진심이었던 P의 사랑에 왜인지 제가 미안해지고 눈물이 났습니다.


P는 자신의 꿈 때문에 은기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우주로 떠남으로서 은기와의 사랑을 이어나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는 은기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했던 그 선택 때문에, 로봇 은기에게 외면당하게 되지요. 그럼에도 그녀는 구구절절 자신을 변명하거나, 또는 로봇P를 폐기시켜서 로봇 은기를 강제로 자신의 곁에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기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큰 꿈을 꾸는 P가 자신을 떠날까봐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우주에 가고싶다는 그녀의 꿈에 반대하고, 결국 결말에 가서는 '이 세상에 오로지 자신 뿐인' 로봇 P를 선택하지요. 제 눈에는 그 모습이 조금 이기적이고 비겁하게 비쳤습니다.


사실은 저는 P보다는 은기에 가까운 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치 나 자신을 대하듯이, 저를 닮은 은기에게 더 날선 비판을 쏟아냈는지도요.


제 애인의 말처럼, 결국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한' 것은 은기가 아니라 P 아니었을까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건

우주항공국 공무원 배지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우주도 아닌...

내 은기였다.

 - <이토록 보통의_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1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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