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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Aug 05. 2017

[Movie]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는가."

<레이디 맥베스> 20170803 윌리엄 올드로이드 作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원작으로 한 소설입니다. 저는 원작 소설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개봉 하루 전에 영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보러 간 것이라 저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영화관에 착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충격적인 스토리와 생동감 넘치는 연출이 더더욱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원작 소설은 러시아 므첸스크 군(郡)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작소설의 러시아 제목은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라고 합니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이야기의 배경을 영국으로 옮겨왔습니다.


온통 들판과 숲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저택. 신기하게도 영화는, 아무 대사 없이 때때로 스크린에 웅장한 폭포라던가 은밀한 숲 길, 끝이 없는 들판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담아냅니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주인공인 캐서린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 뻘이 되는 늙은 지주 알렉산더에게 팔리듯 시집을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시아버지 보리스와 남편 알렉산더, 그리고 캐서린은 고요한 저택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남편 알렉산더와 시아버지인 보리스는 캐서린의 모든 자유를 억압합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정숙한 숙녀로 행동해야 하고, 그들의 허락 없이는 잠을 잘 수도, 옷을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습니다. 그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가끔 창문을 열고 한껏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을 달랩니다.


남편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고 있던 어느 날, 캐서린은 하인 세바스찬과 육체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룻밤은 그동안 억눌려있던 그녀의 모든 욕망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영화는 캐서린의 1인칭 시점에 가깝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 연출의 작은 포인트까지도 모두 캐서린의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가 되어 줍니다.


저택 안에 갇혀 시아버지와 남편의 인형, 노예에 가까운 "레이디" 의 역할을 수행하는 캐서린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은 올림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세바스찬과 사랑의 밀어를 나눌 때, 저택을 혼자 뛰쳐나와 들판을 뛰어다닐 때 캐서린은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늘어트린 모습입니다.


들판으로 뛰쳐나오는 캐서린의 뒷모습을 잡는 카메라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뒤쫓아 달려나오며 찍은 듯이 아래 위로 심하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 때 사운드도 그냥 일반적인 들판의 소리보다는, 캐서린의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 캐서린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찬 바람 냄새를 잡아냅니다.






주인공 캐서린 역을 맡은 여배우 플로렌스 퓨는 1996년생, 한국 나이로 겨우 스물 두살 입니다. 2014년에 <폴링>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신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플로렌스 퓨는 이 영화를 단독으로 이끌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녀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에 가득한 영국 촌구석의 열일곱 소녀 같은데, 큰 눈을 차갑게 내리깔고 턱을 치켜들면 서른을 훌쩍 넘긴 대 저택의 마나님 같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는 하나의 얼굴에 천진함, 두려움, 호기심, 열정, 냉정함, 잔인함을 모두 담아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영화 맨 마지막 장면입니다. 자신이 늘 앉던 자리에 고고하게 앉아, 캐서린은 욕망으로 물든 눈빛을 하고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그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게 되더군요 :)




이 리뷰의 제목을 달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제목.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는가." 무려 러시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국 배경의 영화에 마님과 돌쇠라니.


다소 뻔하고 고전적인 제목이지요?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그런 영화입니다. 뻔할 수도 있는, 따분한 부잣집 마님과 상남자 하인의 러브스토리.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캐서린은 가난을 피하고자 어린 나이에 늙은 부자에게 팔려온 신세입니다. 바깥에서는 정숙한 부인으로서의 행동을 강요받고, 집 안에서는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하인과 다름없는 천대를 받습니다. 숨 쉴 자유도 없던 그녀에게, 세바스찬과의 사랑은 유일한 탈출구이자 지긋지긋한 인생의 구원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캐서린에게는 '세바스찬'이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새장 속에 갇혀 시들어가는 그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누군가,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쏟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인지도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세바스찬은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비춰집니다. 그의 진심이라던가, 행동의 동기 같은 것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캐서린의 눈에 비친 세바스찬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은 점점 광기로 치달아 갑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아주 예측불가능하고, 아주 충격적입니다. 여느 주말연속극 뺨치게 '막장'으로 흘러갑니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포스터와 각종 영화 소개, 그리고 CGV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점, 원작 소설인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 19세기에 지어졌다는 점에 미루어 짐작컨대, 이 영화가 다소 '예술적이고 멋있는데 좀 어렵고 따분할 것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영화는 그 이면의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통속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잰 체하며 '예술 감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수십개의 스크린을 독점한 상업영화들을 피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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