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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Nov 12. 2017

[Book] 사실과 기억 사이, 불완전한 퍼즐 맞추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120326 줄리언반스 作

'기억된다'는 것이란, '역사'란, '과거에 대한 팩트'란 무엇일까요?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는 기억의 불완전성, 자명한 역사적 사실의 존재에 대해 대해 물음을 던지며 시작됩니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는 토니가 친구 에이드리언과 가까워진 과정, 여자친구 베로니카를 둘러싼 토니와 에이드리언의 관계를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리고 의문스러운 에이드리언의 자살로 끝이 납니다. 2부에서는 에이드리언의 자살,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죽음과 유언,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중심으로,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을 토니의 시점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의 초반부, 10대의 소년 에이드리언은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핏대를 세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모든 역사는, 그저 불충분한 문서와 불충분한 기억력에 의존한 불완전한 퍼즐조각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10대의 에이드리언과 토니는 딱 그만큼의 지적 허영에 가득찬 사춘기 소년들입니다. 모든 자명한 사실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존의 질서에 대해 저항하며,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트안샤웅'이니 '슈투름 운트 드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 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언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p.23


10대의 에이드리언은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친구의 자살을 예로 들어 역사의 불확실성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미스테리한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불완전한 문서', 즉 자신의 일기장을 남기고 말이죠.


토니는 베로니카 어머니가 자신에게 유산을 남긴 이유,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과 베로니카 어머니의 관계의 진실을 파고듭니다. 에이드리언이 어린 시절 주장한 그대로의 상황이죠. 불충분한 문서. 불충분한 정보. 조각난 추리.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밝히지 않겠습니다.

 



토니는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베로니카를 찾아가고,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대사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들이 뭐가 문제인 거야?"
"너는 대체 뭐가 문제야?"

더없이 독살스런 어투였지만, 적절한 대답으로 들리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밀고 나갔다.

"저 젊은 친구도 같은 일행이야?"

침묵.

"생활보호대상자라거나 그런 거야?"

(중략)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p.217


원작의 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 굳이 번역하자면 '결말에 대한 예감' 정도가 되겠네요. 그런데 한글 제목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 작품을 다루면서, 제목의 번역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영문 제목보다 한글 제목이 더 마음에 듭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에이드리언과 토니가 핏대를 세워가며 세상의 질서를 도발하는 것만큼이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목 자체도 도발적입니다. 결국 그들의 모든 예감은 틀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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