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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04. 2018

[Book] 잠시 멈추어 남아 있는 나날을 돌아볼 때.

<남아있는 나날> 20100917 가즈오 이시구로 作

소설 <남아있는 나날>은, 평생을 영국의 대저택에서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스티븐스가 떠난 6일간의 여행이 마치 일기처럼 서술되며, 중간중간 과거의 일들이 매우 깊게 회상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부커 상 수상작이기도 한 만큼, 생각할거리도 많고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어렵지 않게 읽혀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끊임없는 '전환점'들을 맞이합니다. 아주 큰 '전환점'도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아주 사소한 일이, 내 남은 인생을 뒤바꾸기도 합니다. 


스티븐스는 우연한 계기로 여행을 떠나며 자신의 과거를 영화처럼 돌아봅니다. 그리고 '품위있는 집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놓쳐버린 많은 전환점들을 뒤늦게 발견하지요. 


너무 늦게 찾아온 스티븐스에게 켄턴 양은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모르긴 몰라도, 켄턴 양을 만나고 난 뒤의 스티븐스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스티븐스의 '남아 있는 나날'들에서는, 그가 좀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만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가 바뀌고, 20대에서 30대가 된 시점을 딱 맞추어 제게 찾아와준 책처럼 느껴집니다. 저 자신에게 충실한, 진실되고 충만한 삶을 살라는 계시일까요? :)





스티븐스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켄턴 양이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딘지 불행해보이는 그녀의 편지에 스티븐스는 마음이 쓰입니다. 심지어 그의 주인은 오래 집을 비울 계획이어서, 그 기간동안 스티븐스에게 여행을 다녀오기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품위있는 집사'의 삶을 살아온 스티븐스는 그냥 여행을 가지는 않습니다. 마치 독자들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여행은 켄턴 양에 대한 사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집사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애써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 그분의 권유로 내게 변화가 생겼는데, 정말 잉글랜드 서부 지방으로 여행을 간다는 생각이 점점 더 내 머릿 속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주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내가 무엇 때문에 숨기겠는가?) 켄턴 양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제외하고는 거의 7년 만에 처음 보내온 편지에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 말은, 내가 여기 이 달링턴 홀에서 봉착한 업무상의 문제들과 관련해 켄턴 양의 편지가 어떤 생각의 고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가 어르신께서 내놓으신 선의의 제안을 새삼 재고하게 된 것은 업무상의 문제들로 인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 <남아 있는 나날> p.11
여기까지 상황이 분석되자 나는 어느새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며칠 전에 말씀하신 친절한 제안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자동차 여행이라면 나의 직무 면에서도 아주 유용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부 지방으로 차를 몰아가다 중간에 켄턴 양에게 들러 정말 여기 달링턴 홀의 일자리에 복귀할 생각이 있는지 그녀의 본심을 직접 탐색해 볼 수 있을 터였다.

- <남아 있는 나날> p.18




스티븐스는 자신의 일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를 테면, 스티븐스가 미국인 주인을 새로 모시게 된 후에, 영국 신사들의 진지함과는 달리 시종일관 농담을 하는 새 주인의 유머코드까지 '공부'하고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용인이 재미있는 농담을 제공해 주어야만 프로답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중략) 그렇다면 주인 어르신께서 농담을 하시면서 내게 기대하시는 반응도 그 비슷한 태도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내가 그렇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 직무 태만의 일종으로 생각하시는지도 모른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그동안 이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 <남아 있는 나날> p.26


집사의 삶을 위해 본인의 사랑도 표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스스로 외면합니다. 그리고 스티븐스는 그것에 일말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 집안에서 일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어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찮은 사랑 따위를 좇아 집사로서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죠.

그래도 고참 고용인들의 결혼은 업무에 극히 파괴적인 영향일 미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을 두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인색한 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부류는, 자신의 일에 충심으로 임하지 않고 마치 연애가 본업인 양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 <남아 있는 나날> p.66


심지어 스티븐스는, 저택에서 중요한 연회가 진행되던 중, 바로 윗층에 있는 방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바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연회를 무탈하게 끝내는 것을 자신의 아버지도 바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억누르고 오로지 최고의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스티븐스의 모습이 21세기 독자의 눈에는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거나 한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집사로서의 '품위'를 찾고, 한심해 보이는 영국 귀족들의 허례허식을 정성껏 뒷받침하는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지요. 그래서 <남아 있는 나날>을 읽고 나니,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본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스티븐스는 '품위있는 집사'로 살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지워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켄턴 양양을 사랑했었는지 독자 입장에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신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요샛말로 치면 '썸'까지도 못 갔을 관계로 보입니다.


그는 매우 생각이 많고, 행동에 옮기기 전 고민도 많고 우유부단하고 소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아주 장황하게 변명합니다. 저처럼 성질이 불같은 분들이라면 스티븐스가 조금 답답해 보이실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속이 빤히 보이는 스티븐스의 행동들이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녀에게 조의도 제대로 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머리를 스쳤다. 그녀에게 사실상 어머니와도 같았던 아주머니였으니 그 소식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다시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실수를 만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복도에 잠시 서서 고민했다. 그러나 다시 들어갔다가는 그녀의 내밀한 슬픔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바로 저 문 맞은편에서 그 순간에도 엉엉 울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 생각이 내 마음에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한동안 복도에서 서성대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따로 기회를 잡아 조의를 표하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 <남아 있는 나날> p.218


어머니와 마찬가지인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켄턴 양에게, 스티븐스는 흔한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소심한 걱정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망설이다가 드디어 그날 다른 장소에서 켄턴 양을 만났을 때, 그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말이나 뱉다가 결국엔 진심과는 다르게 그녀의 업무에 대해 지적하고 맙니다. 


왜,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짝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치면 "잘 지냈어요?"라고 말할까 "오늘 뭐해요?"라고 말할까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잘 뭐해요?" 따위의 이상한 말을 내뱉게 되는.


또 한 번은, 스티븐스가 자신의 방에서 연애 소설을 읽다가 켄턴 양에게 들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점잖은 체를 하며, 독백으로 아주 길게, 자신이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은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함이라며 변명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부수적인' 즐거움도 있기는 했다며 슬그머니 인정을 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감상적인 연애 소설'이라 불릴 만한 책이었던 것은 물론 사실이다. (중략) 내가 이런 작품들을 정독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영어 구사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극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내 나름의 이 방침을 나는 꽤 오래 고수했으며, 종종 그날 저녁 켄턴 양에게 들켰던 그런 책도 선택하곤 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런 책들이 대체로 훌륭한 영어로 쓰였을 뿐 아니라 내 입장에서 실용 가치가 높은 우아한 대화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이런 연애 소설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볼 시간도 욕구도 별로 없었지만 내가 아는 한 한결같이 황당한, 그리고 과연 감상적인 줄거리였기 때문에, 앞서 말한 이점들이 없었다면 단 한 순간도 그런 책들에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따금 이런 이야기들에서 부수적인 즐거움 같은 것을 얻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나도 아무 거리낌 없이 고백할 수 있으며 부끄러워할 것도 전혀 없다고 본다. 

- <남아있는 나날> p.207





스티븐스에 비해 켄턴 양은 솔직하고 당당합니다. 젊은 날의 언젠가는 스티븐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마도 스티븐스와 '썸'을 타던 시기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 말이겠죠.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스티븐스는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켄턴 양이 보낸 편지를 보고서야 그녀와의 과거를 다시 떠올립니다. 켄턴양이 스티븐스와 함께 열심을 바쳤던 달링턴 홀을 떠난 후, 스티븐스는 그녀의 삶에 어딘가 부족함이 있기를 내심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과거에 몇 개의 '전환점'들에서 엇갈려버린 일들에 대해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며 그녀를 찾아가지요.


그런데 의외로 켄턴 양은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티븐스는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정말 행복하냐고 켄턴 양에게 되묻지요. 사실은 '나 없이도, 달링턴 홀에서의 아름다운 날들을 뒤로 하고서도' 행복한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순간이 스티븐스가 자기 자신에게 유일하게 솔직해진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그였다면 그저 '나는 달링턴 홀의 총무 자리를 켄턴 양에게 제안하려던 것 뿐'이라며 또 변명을 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켄턴 양은 망설임 끝에, 20년 간 스티븐스와 켄턴 양을 오가던 감정들에 대해 아주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남아 있는 나날>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중략) 그저, 스티븐스 씨 당신을 약 올리기 위한 또 하나의 책략쯤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막상 여기로 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후 오랫동안 저는 무척이나 불행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전쟁이 지나가고 캐서린이 장성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남편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구하고든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한테 익숙해지게 마련이죠. 남편은 자상하고 착실한 사람이에요. 그래요, 스티븐스 씨, 이제 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을 지키던 켄턴 양이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중략)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 <남아 있는 나날>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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