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개월간 상담을 받았다. 숨이 안 쉬어졌다. 직장 생활은 늘 고단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 어려움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늘 함께였던 공허한 마음도 올해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면을 비추는 글쓰기, 책, 종교인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도 소용없었다.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에 전문성을 가진 이가 필요했다. 심혈을 기울여 개인 상담소를 찾기 시작했다. 약력과 리뷰, 상담사의 인상을 꼼꼼하게 찾아봤다. 그래서 정한 곳은 ‘숨비소리’ 상담소. ‘숨비소리가 무슨 뜻이지?’ 홈페이지에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으면 숨이 좀 쉬어질까 했다. 상담소에 들어서자 홈페이지에서 본 따뜻한 인상의 상담사님이 마중 나오셨다. 기다리는 상담사님을 위해 신발을 서둘러 벗으려던 내게 인자한 미소로 “천천히 벗으셔도 돼요”라고 말했다. 상담실 큰 소파에서 쿠션을 끌어안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상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유년 시절부터 삶을 훑는 작업을 시작했다. 상담 중 오열했던 순간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말할 때였다.
“저는 마음껏 배우지 못했어요.”
이 한 문장을 내뱉고 몇 분을 울었다.
“부모님이 항상 바쁘셨고 육체 노동을 통해 돈을 버셨어요. 제가 뭔가를 더 배우고 싶어 지출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어떤 땐 농사에 필요한 건조기 사는 것을 포기하시고 제 공부를 시켜주셨어요. 그러면 몸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어요. 학교 동료분이 말씀하시길 지금은 20대 초반인 아들이 어렸을 때 주말마다 과학교실을 다녔는데 아들을 데려다 주고 근처 까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는 거예요. 수업 마치면 다 같이 맛있는 식사도 하고 참 좋았대요. 저는 그 아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부모를 희생시킨다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커피 한 잔을 사 먹을 때도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나의 말에 상담사님이 말했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욕구를 가지는 일은 부모님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었네요. 그래서 지금도 욕구를 가질 때 죄책감이 들 수 있어요. 스스로 질문을 자주 던져 보세요.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지?’, ‘뭘 먹고 싶지?’, ‘어떤 도움이 필요하지? 어린 나를 연민하고 지금의 내 욕구를 알아차려 보세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때도 ‘내가 만약 그 선배였다면 어떤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을지, 그 아들이었다면 어디서 어떻게 그 시간을 즐겼을지’ 상상해 보고 실천해 보세요. 이제 나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유가 생긴 어른이 되었어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바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어려운 점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며 자라났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덕분에 독립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남아있어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이기도 해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에요. 다른 이를 돕는 걸 기뻐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소한 것부터 용기 내 도움을 구해 보세요. 거절하면 어떤가요? 거절당해도 한 번 더 부탁해 보기도 하고... 떼쓰는 것도 한 번 해 보세요.”
6개월의 상담을 마치며 고마움을 전하는 내게 “저를 믿고 이야기를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익숙하게 실천하는데 1년, 길게는 3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잘 지내실까 때로 궁금해질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배웅을 받던 날, 나는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따뜻한 말들과 차로 나를 대접해 주었던 상담 선생님께 마음을 담은 글을 쥐어 드리고 상담소를 나왔다.
6개월 전, 상담사님과 처음 연락을 하고 숨비소리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때가 선명히 기억납니다. 도저히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도움을 청하기 어려워하는 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고자 용기내 시작했던 상담이었습니다. 2주 간격으로, 1주 간격으로, 때로는 한 달 간격으로 상담사님을 뵈러 가는 시간은 매번 설렘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썼던 일기를 되돌아보면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뜀박질을 했다. 숨이 쉬어졌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말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소중한 조언들을 건네는 시간은 돈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상담사님께서 제게 건넨 조언들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거절해도 괜찮다는 것, 너무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지닌 것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해보는 태도를 지녀보는 것,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 덜어보는 것, 교사로서의 역할에서 덜어낼 일을 생각해 보는 것, 나의 욕구를 알아채 주고 욕구를 가져도 괜찮음을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등... 삶의 많은 지혜 가운데, 상담사님께서 제 삶을 들여다 봐 주시고 상황에 맞추어 직접 해주신 말씀들이라 힘이 있었고 마음에 깊이 와 닿았었습니다. 실제로 제 삶 속에서 실천해 보게 되었고 6개월 전, 숨 막히던 저의 삶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삐걱대며 여러 고민들을 맞이하며 살아갈 테지만 제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덕분에 힘을 내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다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줄어들 때면 상담사님을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상담을 오래 해도 효과가 없었고,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님을 찾는 것이 참 어렵다고들 하던데 저는 단번에 상담사님을 만나 도움을 받은 것이 참 감사합니다.
상담사님! 제게 그동안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상담사님께서 따뜻하게 눈을 맞추어주셨던 장면들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겨울이 되시길 바라며.
추신) 저는 매해, 감사했던 인물을 뽑아 <올해의 인물상>을 드리는데, 2022 올해의 인물상에 상담사님께서 공동 수상자로 뽑히셨습니다. 함께 드리는 것은 디카페인 차입니다. 누군가의 말들에 귀 기울이시는 고단함이 차를 드시며 녹여지길 바라며...
그녀가 말했던 ‘3년’이 지난 지금을 맞이한 나는 덜 열심히 산다.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한다. 삶이 이대로 충분함을 느낀다. 덜 열심히 살아도 숨이 가쁠 때는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나의 슬픔을 다정한 눈으로 응시하고 단단한 귀로 담아주었던 그녀가 있었던 공간으로 돌아간다. 숨 쉴 틈이 너무 줄어든다면 찾아갈 사람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슬픈 세상에도 누군가를 숨 쉬게 하는 기쁜 공간과 사람이 있다.
2025.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