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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에너지의 자유

by 박미라

퇴직 후 집에 있어보니 종종 불편한 일이 생긴다. 어떤 날은 단수가 된다 하고 어떤 날은 단전이 될 예정이라, 면서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방송한다. 때로는 승강기 운행이 중단될 예정이라고 예고할 때도 있다.

물론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인 아파트 관리를 위한 불가피한 사항이므로 입주민이라면 잠시 이해하고 인내해야 할 일이다. 퇴직 전에는 출근 후 일어나는 아파트 단지 내 단전, 단수, 소독, 지하 주차장 청소, 정원수 관리 등 모두 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나는 직장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입장이 달라지고 보니 그런 상황이 될 때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당혹스럽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동반되면서...



며칠 전에는 단수 상황이 발생했는데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침에 알게 되니 더욱 황당한 입장이 되었다. 단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고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마당에 날씨는 서늘하면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었으나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일 가도 문제는 없으나 지정된 날짜를 지키는 것이 내게 유리하고 득이 되는 용무다. 하지만 씻기도 어려운 환경인 데다 문 밖에는 '주룩비'가 현관문을 막아서서 방해하고 있었다.

또 하나, 요즘 나는 예상치 못한 불청객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온몸을 점령하고 주둔해 있으면서 수시로 나의 신경을 타격하며 짓누르고 괴롭힌다. 로봇처럼 신체가 뻣뻣하기도 하고, 다리가 무거워서 걷기도 힘들다. 힘이 빠져서 팔과 손이 부자연스러우니 작은 물건도 들어서 옮기기 어려우며 옷 입기도, 신발 신기도 매우 불편하다. 일상생활 자체가 삐걱댄다. 한 번씩 신경통이 지나갈 때에는 매우 고통스럽기도 하다. 벌써 넉 달 째다. 치료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호전의 피드백이 작동하지 않는다. 단수상태가 아니어도, 비가 오지 않더라도, 움직이기 어려운 내 신체. 외출의 포기는 쉬웠다. 예정된 용무를 포기해야 할 핑계는 무궁무진...




오늘도 단전 상황이 발생했다. 금방 안내방송을 들었음에도 깜빡했다. 갑자기 화장실 사용할 일이 생겨 무심히 불을 켜니 전등이 켜지지 않고 깜깜하다. "아차, 어쩌지?" 하다가 휴대폰 손전등을 켜서 아쉬운 대로 이용했다.


정전이 되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현대인들에게 전기도 공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갑자기 끊어지면 손을 놓고 안절부절 불안해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두서가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비단 전기와 급수 등에만 국한되지 않을진대, 평소 경각심을 장착해야 할 듯하다. 당연했던 존재가 갑자기 부재상태가 되면 난감한 심리적 위기에 봉착한다. 전기나 물은 일상생활에서 나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귀한 존재다. 어찌 보면 모든 활동에 그 에너지가 사용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동선에 그들이 없으면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일이 마비되어 버린다.




다행히 예고한 시간보다 빨리 점검이 끝난 모양이다. 40분 만에 정상화되었다. 소중한 자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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