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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Feb 20. 2019

그땐 그랬지

2월 20일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는데 이상하게 연락이 끊기지 않는 친구가 있다. 서로의 sns를 꾸준히 지켜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루는 갑자기 내 첫 번째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는 안부 글을 남기더니 리뷰도 남겼다. 그러곤 몇 달 후, 두 번째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전, 내 세 번째 책까지 읽고 있다고 했다. 괜히 민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친구가 남긴 내 책의 리뷰 속에는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졸리고 지루하면 이어폰 하나씩 나눠 끼고 라디오를 들었다. 항상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도 자주 나왔고 감성적인 밤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매일 라디오를 듣기만 하다가 우리도 사연을 보내보자고 했다. 손수 엽서에 이러쿵저러쿵 소소한 이야기를 적어서 보냈다. 약간의 기대와 함께 기다리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뽑힐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웬 걸. 부드러운 디제이의 목소리로 우리 사연을 읽어줬다.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달라붙어 라디오를 함께 들었다. 정적이 흐르던 교실은 순식간에 웅성웅성 시끄러웠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와 전화연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얼떨결에 하겠다고 해놓고 친구와 나는 서로 받으라고 미루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 넘어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OO고등학교 여학생들, 잘 들려요?”    


죽어도 전화 안 받겠다던 나는 어디로 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디제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전화를 끊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야, 너 안 받는다며. 근데 떨지도 않고 말 잘하더라?”    


친구는 내 책을 읽으며 그때 일이 떠올라 한참 웃었다고 했다. 친구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나는 ‘조용하지만 존재감은 있는’ 아이라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존재감은 있었다니 다행이다. 친구가 기억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내 꿈을 기억하고, 이제 그 꿈을 이루길 응원하겠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잊고 있었던 미래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친구야. 글 쓰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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