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칠판에 사과를 10개 그려놓고 말씀하셨다.
“1번부터 10번까지 맛있는 사과 순서대로 그렸어. 자, 1번부터 먹을 사람 손 들어봐.”
여기저기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럼 반대로 10번부터 먹을 사람 손 들어봐.”
나는 10번부터 먹겠다고 손을 들었다. 좋은 건 아껴두는 버릇이 있어서 가장 맛없는 사과부터 해치우고 마지막에 달콤한 사과의 맛을 느껴야 더욱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1번부터 먹는 사람은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먼저 먹고, 그다음 맛있는 사과를 먹고 또 다음 맛있는 사과를 먹게 되는 거야. 10번부터 먹는 사람은 가장 맛없는 사과를 먼저 먹고, 그다음 맛없는 사과를 먹고 또 다음 맛없는 사과를 먹게 되는 거지. 출발부터가 다르지? 앞으로 어떤 것부터 먹어야겠어?”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일제히, “가장 맛있는 사과요!”라고 대답했다. 소심해서 반항하지 못했지만 선생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먹는 순서를 선택하는 일은 각자의 스타일과 생각이 다르다. 먼저 맛없는 사과를 먹었다고 해서 끝까지 그다음에도 맛없는 사과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손해 보는 일은 가끔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에 먹으려고 끝까지 아껴뒀는데, 말도 안 하고 날름 가져가서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고이고이 남겨둔 행복의 조각을 한 순간에 낚아챈 사람들이 미웠지만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그 음식을 싫어해서 안 먹고 남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미련 없이 성질 급하게 먹는 사람과는 식사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앞에 두고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후의 순간까지 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최후의 행복을 맛보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이 느껴야 할 최후의 행복을 쉽게 뺏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