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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Dec 01. 2018

감정 마스크팩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일찍 결혼해서 바로 연년생으로 아이를 출산한 친구가 있다. 육아도 만만치 않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친구가 늘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학창 시절에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웃게 해 주던 친구가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사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이가 아파서 다른 아이들처럼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데리고 있어야 했다.    



언젠가 새벽에 전화해서는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같아.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나 오래 살 수 있겠지?” 라며 펑펑 울기도 했다. 아직 육아는커녕 결혼도 안 한 내가 주제넘게 뭐라고 위로를 할 수가 없어 그저 듣기만 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모든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포기하고 사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친구가 더 서글픈 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엄마들이 부러워서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똘똘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꿈이 많았던 소녀는 하루 24시간을 아픈 아이 곁에서 떠날 수 없는 엄마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며칠 후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결국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아무리 아이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살자니 답답해서 부업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스크팩을 봉투에 넣는 부업이었다. 한 장에 5원 정도 하는데 아이 자는 시간에 틈틈이 하면 치료비와 간식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그 예쁜 손으로 이제는 아이를 위해 10원이라도 벌겠다는 친구의 모습이 낯설었다.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라던 친구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해 선택한 도피처가 결혼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도,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일도 다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가끔 놀러 가서 얼굴 보며 얘기하는 것뿐이었다. 조만간 한 번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 다음날 바로 친구에게 갔다.     


현관문부터 거실까지 온갖 부업 재료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친구는 그새 익숙해진 건지 마스크팩 일거리 3천 장을 받았다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가르쳐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놀러 왔는데 이런 거 어떻게 시키냐고 미안해했다.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우리 사이에 무슨 상관이냐며 빨리 비법 전수나 하라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던 친구가 아크릴 판과 손가락에 끼우는 고무를 건넸다. 그러더니 제법 달인처럼 말했다.    


“우선 가운데에 아크릴 판을 대고 반을 접어. 그다음에 오른쪽 왼쪽 접어서 이렇게 봉투에 재빨리 쏙 넣어야 돼. 할 수 있겠어?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아.”    


친구의 말대로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점점 속도가 붙었다. 둘이 앉아서 부업을 하며 수다를 떨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혼자 하다가 같이 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좋으면서도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친구가 괜히 자책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잘 만나야 된다는데 괜히 나 같은 친구 만나서 네가 이런 궁상맞은 일을 다 하고 미안하다.”    

억지로 분위기를 바꾸는 건 우리 사이에 어색한 일이었다. 나는 무심한 듯,    

“이거 궁상맞은 일이야? 근데 나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궁상맞은 일이 적성에 맞는 건가? 글 쓰지 말고 이거 해야 하나. 어이없게 새로운 재능을 찾았네.”하고 말했다.    



친구가 부업으로 받은 마스크팩은 ‘감정 마스크팩’이었다. ‘감정 마스크팩’은 그날의 감정에 따라 피부 관리가 가능하다는 콘셉트로 일반적인 마스크팩과 달리 시트 자체에 기쁨, 슬픔, 화남, 부끄러운 표정이 프린트되어있었다. 스킨케어 기능뿐 아니라 재미 요소까지 생각한 신개념 마스크팩이었다. 인간은 수 백 가지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기쁨과 슬픔, 친구는 화남과 부끄러움의 마스크팩을 맡아 작업했다. 이게 뭐라고 한 가지 감정의 표정을 계속 오랫동안 보고 있자니, 내 감정도 마스크팩의 표정과 일치되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울해지기 전에 수시로 다른 감정 표정의 마스크팩으로 교체해 작업하기도 했다.     


어느새 3천 장의 마스크팩 작업을 끝냈고, 친구는 “마스크팩도 맞드니 낫다 야.”하며 ‘기쁨’의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건조하고 여기저기 긁힌 내 손을 보며, 친구는 얼마 동안이나 이 일을 해야 삶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생각했다. 내 감정의 표정은 친구와 달리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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