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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Nov 24. 2018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다섯 아이가 우주 멀리 아주 멀리 사라졌다네.

이젠 모두 용사 되어 오, 돌아왔네. 후뢰시맨 후뢰시맨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우리의 평화의 수호자. 후뢰시맨 오총사”    


어릴 적 나를 TV 앞으로 끌어들인 가장 강력한 유혹의 노래였다. 어떤 중요한 일이 있어도 나에겐 후뢰시맨이 1순위였다. 비디오가 닳도록 보다가 결국 돼지저금통을 털어 비디오테이프를 사기도 했다.  

   

지구에서 납치된 다섯 명의 아이들은 후레쉬별에 조난 당해 혹독한 별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주선을 훔쳐 타고 지구로 가서 적들과 싸워 결국 지구를 구해낸다. 하지만 후레쉬별에 오래 살아서 체질개선이 되어 지구 모든 것에 거부반응이 일어나 후레쉬별로 다시 돌아간다. 그중 4호 옐로 대원은 가족을 찾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울면서 헤어진다. 같은 장면을 수백 번 보면서도 볼 때마다 울던 기억이 난다.    


인생이라곤 고작 10년쯤 살았을 무렵, 후뢰시맨은 나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기에 그들에게 그토록 깊게 빠졌을까? 한 편을 보고 나면 문구점으로 달려가 후뢰시맨 시계를 사서 변신 동작을 연습하고, 그들이 변신하면 쓰고 다니는 헬멧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묻곤 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장래희망, 꿈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나의 꿈은 ‘후뢰시맨 5호’였다. 장래희망 칸에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5호 (분홍 여자 대원)’이라고 썼다.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도 있었다. 이제 곧 후뢰시맨은 나이가 들어 늙을 테니 그 자리를 내가 물려받아 지구를 지키겠다는 야무진 생각이었다.  

   

출처 - 구글



숙제를 검사하시던 선생님은 갑자기 출석부로 내 머리를 내리치고 뒤에 가서 손들고 있으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했고, 맞은 곳이 너무 아파 눈물을 훌쩍거렸다.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 뭘 잘했다고 우냐면서 사정없이 머리를 때렸다.  



“장래희망 써오라고 했더니,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장난이라니. 장래희망에 대해 진심을 다해 빼곡히 썼다. 살면서 그때만큼 간절히 뭔가 되고 싶어서 노력한 적도 없었다. 용돈을 털어 장비를 사고 수십 번, 수백 번 변신 동작을 거듭 연습하며 수없이 넘어지고 깨졌다. 온 마음 다해 간직했던 나의 첫 번째 꿈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같은 꿈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웃음 속에서 처참하게 짓밟혔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더 맞지 않기 위해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그 당시 내 인생은 온통 후뢰시맨으로 채워졌었다. 그것이 그저 영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제 존재하는 줄 알만큼 심한 감정이입으로 헤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뢰시맨이 되어 지구를 지키겠다던 어린 소녀는 사춘기 때 법에 관심이 생겨 판사가 되겠다는 꿈으로 바뀌었고, 음악에 빠져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꿈을 말할 수 없었다. 꿈을 말하면 무시와 폭력을 당하게 될 거라는 불안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의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꿈을 품은 어린이를 향한 감정 폭력이었다.

    

이제는 지구를 지키기는커녕 나 자신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어설픈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끝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 후뢰시맨은 내게 가장 비극적이고 슬픈 스토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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