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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an 15. 2019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1월 15일


휴대폰의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오전 9시가 되길 기다렸다. 8시 59분 44초, 45초....

통화버튼 누를 준비를 했다. 할 말을 잊지 않으려고 빽빽하게 적어둔 메모지도 꺼냈다. 만발의 준비를 끝냈을 때, 휴대폰의 시계가 9시를 나타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서비스는 1번, 어떤 서비스는 2번, 어쩌고 저쩌고 줄줄이 이어지는 안내 멘트를 듣고 버튼을 눌러 상담원 연결을 기다렸다.     


전화만 받아봐라, 내가 가만있지 않겠다, 고객을 뭘로 아는 거야?, 오늘 너희들 고생 좀 해봐라, 하는 마음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한 고객들이 많았는지 계속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안내가 나왔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데 곧 상담원이 연결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폭포수처럼 할 말을 쏟아내려는 순간 들려오는 한마디 말에 모든 행동이 멈춰졌다.



지금 연결해 드릴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종종 'OOO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이고, 그 일로 돈도 받으니까 ‘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마음이 다치는 일쯤은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천대받고 마음을 다치는 직업이 많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느 자리에 있든 가치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귀한 사람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형제와 자매이다.     


잠깐 생각했다. 만약 상담원이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현실적으로 가족이라고 해서 다정하게만 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악한 감정으로 ‘너 당해봐라’ 하며 말하지도 않는다. 분명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피해를 입은 일이었지만 따지려고 이것저것 적어둔 메모지를 손으로 구겼다.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긴 메모지와 함께 못난 내 마음도 버렸다.    


전화로 상담만 하시는 분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내가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갑자기 연결된 상담원과의 통화에 전혀 계획에 없던 얼굴 근육을 쓰느라 바들바들 떨면서 웃으며 말했다.    

 

“자꾸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어제 많이 바쁘셨는지 아직 처리가 안 돼서 전화드렸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감정노동자는 우리의 이웃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으로서 존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끔씩 잊는다. 안내 멘트 한 문장 덕분에 큰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행동을 할 뻔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에게 상처 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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