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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an 19. 2019

이 죽일 놈의 승부욕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보험회사는 보험왕, 자동차 회사는 판매왕, 웹툰에는 복학왕이 있다면 교회는 전도왕이 있다. 어떤 왕도 되어보지 못했지만 가끔은 탐나는 자리다. 살면서 한 번쯤 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믿음 좋은 친구는 전도왕이 되려고 노력했다. 모든 일정이 교회 예배시간과 모임이었고 교회 일이라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가곤 했다. 그런 친구가 교회에서 해보지 못한 것은 전도왕이었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 참여했지만 본인보다 더 인정받는 사람은 전도왕이라고 했다.    

 


어떤 일에도 크게 욕심내지 않던 친구가 전도왕에 욕심내기 시작했다. 남에게 강요하거나 피해 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던 배려왕이던 친구는 한순간의 욕심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도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굳이 낯선 곳에 가고 싶지 않아서 거절해도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나와서 자기가 전도왕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합의하고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나갔다. 어른들께만 인사드리고 최대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다가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청년이 왔다며 예배 후에 밥을 먹고 게임을 하자고 모두들 붙잡았다. 어른들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어 꼼짝없이 붙들려 앉아 게임에 참여했다.   

  

종목은 윷놀이였다. 윷놀이는 민속놀이고 어른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어릴 때 가족끼리 자주 하던 놀이였다. 항상 놀이의 끝은 씩씩거리며 “다시 붙어!”를 외치거나, 이겼다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윷놀이보다 얌전히 있으려는 생각에 집중해서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팀이 너무 뒤처지면서 슬슬 잠자던 승부욕이 발동한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참견하지 않았던 말을 놓는 방법에도 참견하며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윷, 업어. 업고 두 개 같이 가야지! 우리 너무 뒤처지고 있어요!”    



조급 해지며 사람들에게 빨리 던지라고 재촉하고 어느새 윷놀이의 중심에 있었다. 처음 나를 보고 참해 보인다며 며느리 삼고 싶다던 집사님들은 놀란 표정이었고, 교회에서 만나 반갑다던 목사님 아들이자 동창은 나와 상대편에서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었다. 악전고투 끝에 상대팀을 거의 따라잡았지만 한 점 차이로 패를 당했다.

    

한 점 차이라는 것에 더욱 아깝고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또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그대로 끝내자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곧 오후 예배가 시작된다며 다들 정리하기 시작했다. 윷놀이를 한 번 더하려면 계획에 없던 오후 예배까지 드려야 했다. 오후 예배도 드릴 테니 끝나고 다들 모이라고 말했다. 오후 예배 시간 동안 설교 말씀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윷놀이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밖에 어떤 생각도 없었다.     


오후 예배가 끝나고 윷놀이 2차전이 시작되었다. 사정없이 실력 발휘를 했고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기분 좋아서 손뼉 치고 있는데 목사님 아들이 나를 전도한 친구에게 말했다.    


“야, 다시는 쟤 데려오지 마. 전도고 뭐고 교인 없어도 되니까 데려오지 마. 어휴, 너무 힘들어.”    


교회는 웬만하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곳이다. 그런 교회에서 혀를 내두르며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내 안에는 괴물이 있다. 일명 승부욕 괴물. 나는 이 녀석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웬만하면 꺼내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랫동안 잠자던 녀석이 한 번씩 기지개를 켤 때가 있다. 한 번 나왔다 하면 그동안 묵혀둔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야만 다시 사라지는 녀석이다. 그렇게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면 또 언제 왔다 갔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친구는 전도왕이 되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이 이 죽일 놈의 승부욕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씩 올라오는 승부욕을 참아야 할 때는 그 시절 목사님 아들이 한 말을 생각한다.     


“다시는 쟤 데려오지 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일까? 윷놀이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놀이인 것 같다. 윷놀이에서 자주 나오는 건‘개’나 ‘걸’인데, 내 승부욕은 항상‘도’ 아니면 ‘모’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 괴물을 절제시킬 재간이 없으니 눈앞에 윷이 보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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