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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an 12. 2019

웃는 얼굴에 침 뱉는다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독일의 학자 칼 조세프 쿠셀은‘당신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다. 웃는 얼굴은 상대방도 함께 웃게 만드는 기분 좋은 행복 바이러스라는 말도 있다. 정말 그럴까?  

  

나는 웃는 얼굴에 숱하게 침을 맞았다. 어릴 때 TV를 보다가 배를 잡고 웃고 있을 때 옆에서 언니가 한 마디 했다.    


“야, 웃지 마. 너는 웃으면 광대뼈 튀어나오고 못생겼어.”    



웃는 얼굴에 제대로 침을 맞았다. 웃지 마, 광대뼈, 튀어나오고 까지는 그리 기분 상하지 않았다. 내가 절망한 부분은‘못생겼어’였다. 메아리처럼 그 말만 계속 귓속에 맴돌았다.     


‘웃으니까 못생겼어, 웃으니까 못생겼어.’    


어린 시절 나의 자신감 도둑은 언니였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무시하는 사람, 무서워서 내가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언니였다. 언니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늘 나를 기죽이고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언니가 내뱉은 한마디 말 때문에 웃으려고 할 때마다 멈칫하게 되었다.‘나는 웃으면 못생겼으니까 그냥 무표정으로 있자’ 생각하며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학창 시절 내내 차가운 아이, 늘 화가 나 있는 아이로 보였다. 한 친구는 내 표정에 대해 가끔 웃고 있을 때조차도 슬퍼 보인다고 했다. 웃고 싶어도 마음껏 웃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는 일이 어린 내게는 꽤 버거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여자 체육 선생님은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셨다. 시험이 끝나는 날은 게임을 하고 놀거나 산책을 하며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어릴 때 하고 놀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했고, 선생님도 흔쾌히 함께 하셨다. 반장이 첫 번째 술래를 하기로 했다. 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가다가 술래의‘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소리에 맞춰 모든 행동을 멈췄다.     


그때였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큰 소리로‘타임!’을 외치며 웃기 시작하셨다. 내 쪽으로 슬금슬금 와서 나를 툭 건드리셨다.    


“야, 몸만 안 움직이면 돼. 로봇처럼 표정까지 그럴 필요 없잖아. 표정 너무 웃겨.”라며, 깔깔대고 웃으셨다.

   

웃으니까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콤플렉스가 되어 웃지 않는 오랜 습관으로 표정이 항상 굳어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안 되는 놀이를 하면서 몸과 표정이 모두 경직된 모습이 꼭 로봇 같았나 보다.     



언니의 사소한 말 한마디를 털어내지 못하고 오랜 시간 소심하게 살았다. 내가 다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게 된 건, 끊임없이 “넌 웃을 때가 제일 예뻐.”라고 말해준 친구들의 또 다른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언니가 훔쳐 갔던 나의 자신감도 어렵게 되찾아왔다. 지금의 나에게 “야, 웃지 마. 너는 웃으면 광대뼈 튀어나오고 못생겼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웃을 때 광대뼈 튀어나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광대가 튀어나오지 않는 사람은 안면 근육이 마비됐거나 보톡스를 잘 못 맞아 부작용이 생긴 사람이겠지. 언니도 웃지 마, 못생겼어.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자신감을 찾고 가장 먼저 할 수 있게 된 것은 감정 표현이었다. 웃기면 웃고, 슬프면 눈물 흘리고, 화나면 화도 내고, 할 말은 하고, 그렇게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웃는 얼굴에 침을 맞는다고 해도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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