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친한 동생이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 초대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다시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는 오래된 마을의 작은 골목과 가파른 언덕을 지나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다니 새삼 신기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동생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그 순간 휴대폰이 통화불능 지역 표시로 바뀌면서 터지지 않았다. 시골도 아니고 (요즘은 시골도 잘 터진다고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마을버스 타고 올라왔던 언덕길로 내려가 작은 마트로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휴대폰이 터지는지 확인했다. 마트 안에서는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 같아 동생에게 얼른 메시지를 보내 놓고 다시 정류장으로 올라갔다. 공중전화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인적 드문 동네에 멀뚱하게 서있으려니 가상세계에 혼자 떨어진 것 같아 불안했다. 휴대폰 하나에 이렇게 큰 불안감을 느끼다니 우리 일상생활에서 휴대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뛰어오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만나자마자 이 동네 왜 이러냐며 조잘조잘 수다가 시작되었고, 곧 집에 도착했다. 신혼집은 곳곳에 동생네 부부의 손길이 닿은 집이었다. 서울의 작은 자투리 땅을 사서 직접 짓고 꾸민 아담하고 따뜻한 집은 처음 방문하는 곳이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작은 키의 나도 조심하게 되는 낮은 천장의 다락방과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는 신혼부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서투른 솜씨로 동생이 만들어준 스파게티와 따뜻한 차, 집에서 키우는 동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집은 어쩐지 ‘효리네 민박’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예쁜 집에서 동생이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일이었다. 마당 급식소를 만들어 수시로 나타나는 길고양이들을 쫓아내지 않고 일일이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사람이 먹는 것처럼 여러 가지를 섞어 영양가 있게 정성을 듬뿍 담아 준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동물과 친하지 않은 나는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대상만 다를 뿐, 사람이 무언가에 아무 조건 없이 애정을 쏟는 일은 본인이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이 험한 세상에서 동물이든 사람이든 돌아갈 집과 가족이 없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떠돌다 어느 곳에선가 자신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내주는 곳에 자꾸 가게 되는 이유도 가족의 품 같은 따뜻함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그렇게 베푸는 일은 자신의 돈과 시간,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동생은 그 어떤 일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갈 곳 없는 고양이들에게 자꾸 마음이 끌려서 밥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동생의 모습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정성을 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집을 나서는데 스페인 여행에서 사 왔다는 국화차를 선물로 받았다.
“언니, 글 쓸 때 차 한 잔씩 하면서 쓰세요.”
차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바쁘게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던 동생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도 동생은 고양이와 눈을 맞추며 정성껏 밥을 내줄 것이다. 고양이가 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겠지.
동생이 예뻐진 건 단지 신혼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변을 사랑으로 채우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