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하고 우리 동네로 온 친구와 오랜만에 배드민턴을 쳤다. 저녁으로 곱창을 먹기로 했는데 우리가 사람이라면 양심상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나서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신발장 위에 초라하게 오랫동안 홀로 놓여 있는 배드민턴 채를 발견했다. 그냥 걷는 것보다 재밌겠다 싶어 배드민턴을 챙겨 나갔다.
시작부터 서로 정신없이 몰아치다가 한순간 점프를 하며 힘껏 내리쳤는데 공이 멀리 날아갔다. 공을 주워온 친구의 복수가 시작됐고, 그때부터는 공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누가 더 멀리 보내고 주워오게 만드냐를 겨루는 이판사판 게임이 되어버렸다.
야, 감정 실어서 치지 마.
예상치 못할 때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승부욕은 내가 이기거나 상대가 포기해야 끝난다. 다행히 배가 많이 고팠던 친구가 이 정도면 열심히 운동했다며 곱창집으로 가자고 했다. 동치미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 마시고 곱창이 나오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볶음밥으로 마무리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친구가 오늘은 그냥 집에 가기 싫다고 2차를 제안했다. 어디든 한창 시끄러울 시간이라서 우리 집 옥상에 가서 먹기로 했다. 마트에 들러 친구는 캔맥주,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사과 주스, 그리고 오징어와 과자를 사서 옥상으로 갔다.
아빠가 채소를 말리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평상에 앉아 수다를 시작했다. 처음엔 앉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는 흐트러졌고 결국 둘이 평상에 드러누웠다. 간간이 보이는 별을 바라보며 친구가 말했다.
시골이 아니어도 별을 볼 수 있구나.
몰랐네.
하늘을 보고 다녀야 별이 떴는지 알지.
문득 이렇게 조금 더 누워 있다 보면 세상이 어두워질 테고 그럼 별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간 친구는 대뜸
“우리의 빛나는 시절도 다 갔구나.”라며 한탄했다.
빛나는 시절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있었다고 해도 아주 잠깐이었다.
빛나고 난 뒤가 더 편할지도 모르잖아.
일본의 에세이스트 사노 요코는 ⟪사는 게 뭐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마음만은 화사했다. 나도 모르게,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넘었다. 화사한 생명 같은 건 완전히 잊었다. 이 나이가 되니 마음이 화사해지지 않아서 오히려 편안하다.”
빛나는 순간은 한순간이지만 평범한 일상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돌아보면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도 아니었다.
“별을 보다가 잠드는 추억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순간이 인생에 한 번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기억이 있다는 게 진짜 행복이지.”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세상 편하게 잠들었다. 언젠가는 오늘이 빛나던 시절이라고 기억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도 이렇게 별을 보다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작가 조연주입니다.
이번에 출간한 저의 신간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에 수록된 원고 중
15편을 선택해 공개하는 매거진입니다.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으로 연재했던 10편과 출간 기념으로 미공개 원고 중
5편의 추가 글을 하나씩 꺼내려합니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