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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un 08. 2019

문득 돌아보니 허무함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바라보며

어릴 때부터 몸을 쓰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거나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리 같이 놀자며 끌고 들어가려고 해도 뿌리쳤다. 사람들이 날 보며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었다. 나름대로 나만의 재미가 있는데 보는 사람은 답답해한다. 재밌는 게 있다며 여러 가지 제안을 받아도 대부분 거절했다. 나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유흥이나 오락이 가장 피곤한 일이다.    


아무리 거절을 당해도 끝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있다. 기필코 내가 너를 바꾸고 말겠다는 이상한 오기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다. 내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그렇다.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지 하나씩 알려주겠다며 끈질기게 연락해서 나를 불러내고 새로운 곳에 데리고 다녔다.    



밥을 먹은 후, 가볍게 몸을 풀어야 한다고 볼링장에 갔을 때였다. 태어나서 볼링장에 처음 가봤다. 무거운 공을 그럴듯한 포즈로 던진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두 손으로 내던지고 삐끗해서 놓치고 계속된 실패였다.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 힘들기만 해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옆 레인에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4명이 볼링을 치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없이 각 잡힌 포즈로 장갑을 끼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각자 볼링을 치기 위한 준비에만 몰두했다. 프로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스트라이크가 나오면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느새 넋 놓고 그녀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이 볼링 치는 모습은 깔끔하고 쉬워 보였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도 다시 볼링을 쳤다.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지만 땀이 맺힐 만큼 쉬지 않고 볼링에 몰두했다. 이제는 친구가 잠시 쉬려고 해도 내가 쉬지 못하게 했다. 옆 레인에 있는 그녀들처럼 멋지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절대 쉴 수 없다고 말했다. 그저 즐거운 취미 하나 만들어 주려고 나를 볼링장에 데려갔던 친구는 갑자기 돌변한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며 걱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소리쳤다.    


“야, 빨리 쳐. 쉬지 마. 우리가 지금 쉴 때가 아니야. 빨리빨리 움직여.”    


볼링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 레인의 그녀들이 떠났다. 친구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이성을 잃은 채 볼링을 쳤다. 결국 친구가 먼저 지쳤다.   

  

“우리 이제 진짜 그만하자. 집에 가야지. 너무 늦었어.”    



그제야 시계를 봤다. 밤 11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평소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딸이 아무 연락도 없이 늦은 시간까지 집에 오지 않아 걱정하셨던 아빠의 부재중 전화가 수 십 통 와 있었다. 정신이 돌아와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환승해서 집에 가면 한 시간은 걸리는데 택시를 타면 20분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소 택시를 타지 않지만, 친구가 너무 늦었고 둘이 함께 타니까 오늘만 택시를 타자고 나를 설득했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목적지를 말하면 모두 승차를 거부하고 가버렸다. 도대체 왜 거부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계속 오는 택시를 잡고 말했다.    


“기사님, 남양주요.”

“안 가요.”    


그러곤 떠나려는 택시를 다시 잡아 물었다.    


“왜요? 왜 남양주는 전부 안 가요? 이유가 뭐예요?”    


다급해진 내가 따지듯 물었다.    


“이 시간에 경기도는 안 가요.”    


계속된 승차 거부에 지쳐 벤치에 앉았다. 이게 뭐라고 또 승부욕이 발동했다. 우리는 불현듯 중학교 때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차가 끊겨 택시를 잡았던 방법이 생각났다. 친구와 눈빛만 봐도 서로 그 방법을 써야 할 때임을 알았다. 나는 다시 걸어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    


창문이 열리고 뒤에서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남양주, 따불이요!!”    


이래도 안가?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결과는 당연히 성공!!!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택시의 질주가 시작됐다. 까만 서울의 밤을 빛내주던 반짝거리는 한강의 불빛을 바라보며 어린 나이에 터득했던 자본주의 체제가 여전함을 느꼈다. 우리는 두 배로 빠르게 집에 도착했고, 두 배로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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