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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an 18. 2019

거꾸로 말해요

1월 18일


바쁘게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찰나에 떠오른 생각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갈까 봐 빨리 붙잡아 두어야 했다. 가까스로 생각들을 놓치지 않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깐 휴식을 취할 겸 물 한잔 마시러 주방에 나가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 아빠도 방에서 나오셨다.    


“딸, 오늘 명이 때문에 비뇨기과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료를 못 받았어. 거기 말고 우리 동네에 또 다른 병원이 있나?”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지만 그게 뭔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눈동자를 위로 올리고 짧은 시간 생각했다.     


‘분명 뭔가 이상한데, 뭐지?’    


명이가 아니라 이명(외부로부터의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느끼는 현상)이었다. 비뇨기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였다. 혼자 웃음이 터졌다. 아빠를 놀릴 수 있는 기회였다.    


“아빠, 비뇨기과 가셔서 명이 때문에 왔다고 하실 생각이었어요?”    


그때까지 아빠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셨다.     


“응. 왜?”    


“명이가 아니라 이명이요. 그리고 비뇨기과가 웬 말이에요. 이비인후과죠. 오늘 비뇨기과에 사람 많아서 진료 못 받으신 게 다행이네요.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하하하하하.”   

 

“아, 그렇구나. 이명이구나. 그건 자꾸 헷갈리네. 명이나물 때문에 명이가 더 입에 잘 붙어. 허 참....”    


“그렇게 헷갈리시면 앞으론 아빠가 생각한 단어를 거꾸로 말하세요.”    


아빠는 민망하셨던지 “그럼 네 이름도 거꾸로 말할까? 아빠를 자꾸 놀려!”하시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늘 자신만의 어휘력으로 웃음을 주시는 아빠께 오늘도 감사함을 전하며, 아무래도 병원은 내가 모시고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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