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늦게 들어오신 아빠가 잔치국수를 찾으셨다. 국수를 해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피아노 소리 들어 본 지 오래됐다며 듣고 싶다고 하셨다. 다시 거실로 나가 국수를 드시고 계신 아빠를 등지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빠를 위해 연주하는 곡은 늘 정해져 있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
국수를 드시다 멈추시고 다음 파트를 아빠가 부르셨다.
♬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
이 노래는 수천 번 아빠를 위해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노래였는데 언제부턴가 부르기 힘들었다. 어릴 때는 그저 음표와 박자만 신경 쓰느라 이 노래가 이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노래인지 몰랐다.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 때문에 부르면서 수시로 울컥한다.
♪♬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
훗날 아빠가 떠나시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일까. 꼭 그때를 위해 쓰여진 가사 같아서 부르는 게 두렵다.
‘혼자인 날 느낄 때’..... 그 순간이 조금 천천히 와주길.....
그 사이 다시 국수 드시는 데 집중하시는 아빠를 위해 늘 그렇듯이 ‘고향의 봄’과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로 마무리했다. 뒤돌아보니 아빠는 국수 국물을 드시고 계셨다.
“아, 잘 먹었다. 노래 세 곡에 국수 한 그릇, 시간 기가 막히네.”
나에게 아빠와 잔치국수, ‘내 사랑 내 곁에’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한 세트가 되어버렸다. 언젠가 친구가 우연히 길가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듣고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는 얘길 했었다. 나에게는 ‘내 사랑 내 곁에’가 그런 노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웃으며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많이 불러서 가사에 무뎌지면 좀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