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님의 <왜 일하는가>를 읽어보았다.
‘일’이 인간의 내적 성숙/성장을 돕는다거나, 한번 꽂힌 일은 집착에 가까운 집념을 가지고 미쳐서 일을 해야 한다거나, 잠재의식에 박힐 만큼 일에 대한 애정과 간절함을 가져야 한다거나 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평소 내가 생각하던 그것과 비슷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공감이 갔으나,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나에게 흥미롭게 와 닿지 않아서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글의 전개가 어떤 사례를 쭉 말하다가, ‘그때 나는 이런 태도로 임했다!’라는 식인데 뭔가 중간 과정이 생략된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어떤 사고 과정을 통해 저런 태도를 지니게 된 것인지 사고의 흐름을 엿보고 싶은데 그게 충족되지 않아서 내내 아쉬웠다. 오히려 어떤 구절에서는 반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반골기질이 강한 사람이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식의 문장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론보다는 과정과 흐름에 집착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자기 객관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의외의 성과ㅋㅋㅋ)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일의 철학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그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일독이 아닌 그 이상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나의 일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정리할 동기를 던져줬음에 있다.
1. 나에게 ‘일’이란
“노동은 맡은 일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완성을 위한 과정입니다. 일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연마하고 인간성을 키워줍니다."
가장 크게 공감되었던 구절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일에 대한 나의 정의는 “좋아하고 재밌는 것을 하면서(or공부하고 배우면서) 돈까지 버는 행위.”에 불과했다. 물론 현재도 이 정의는 유효하다. 다만, ‘내적 성장의 과정’이라는 정의가 추가되었다. 조직 내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사건들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시련과 번뇌, 고통과 성장을 느끼며 ‘일’이란 것이 사람의 내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2. 일을 하며 깨닫는 것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투적인 것들을 몸소 직접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한 선택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 라거나, ‘시간의 유한성’과 같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여행지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끼는 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신뢰’의 참의미와 가치, ‘관계’의 복잡성과 유동성, ‘자존감’과 ‘자신감’의 차이, ‘작은 배려와 양보’의 큰 힘, ‘가치’의 상대성과 다양성, 타인의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 인생의 ‘유한성’과 같은 것들 모두 일을 하며 강렬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의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것들을 매우 늦게 깨달았거나 평생 알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3.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일을 할 때에는 사실 둘 다 필요하다. 굳이 전후관계를 따지자면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먼저이고, 이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을 하다 보면 늘 썩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일의 대분류 카테고리가 ‘좋아하는 것’이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세부 일들도 좋아할 확률이 높거나 좋아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이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현재 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애써야 하는데, 그럴 땐 ‘이 일을 잘하게 되면, 내 인생이나 다른 일에 어떤 긍정적 영향이 있을까?”를 떠올려본다. 일이란 것은 사실 모두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서로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그 일을 통해 얻을 점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 일을 해야 할 당위성이나 가치를 찾지 못했던 순간에는, 난 그 일을 그만뒀다. 그만둘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해왔던 것은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것임을 알기에, 앞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만두지도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두렵다. 그건 그때 가서 더 생각해 봐야겠다.
4. '성공’이란 무엇인가
책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 일을 잘하고, 일과 사업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만이 성공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나 외의 타인의 삶도 나아지게 기여하는 인생이다. 여기에서 함정은 타인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행위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취와 성공이 있어야 수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에게 현재 버전의 일과 사업에서의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물론 나도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님처럼 내 기업의 성공 자체가 곧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될 정도로 큰 기업가가 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덧) 마지막으로 평소 "일을 대하는 태도"가 책과 사람을 통해 후천적 개발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더 강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