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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20. 2023

달리기를 기'다리기'

"아침밥 먹어라.. 다섯 번째!"

왜 아이들은 밥 먹으라는 소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게 할까? 고둥학생 두 아이의 아침은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아침을 들며, 급식통(수저)과 마실물을 챙겨 학교에 가기까지 약 1시간 30분을 보내는데 그 사이 내 잔소리를 대략 30번 정도 듣는 듯하다. 요사이는 둘째가 축농증으로 항생제를 장복하고 있어 그 약 먹는 횟수와 시간까지 챙기느라 잔소리가 늘었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듯 급히 챙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침 달리기를 내가 정한 마감(8시)까지 끝내고 싶다. 8시에 끝내려면 적어도 7시에는 길을 나서야 는데 아이들은 학교 가기 싫어 마음이 느긋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을  다그친다. 애들이 아침을 먹고  아이들 밥 챙기고 바람처럼 뛰쳐나와 내 운동을 시작하는 아침, 이게 내가 최근 시작하는 아침 루틴이다.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나이키러닝앱의 경쾌한 시작 구령이 들리면 발이 부산히도 움직인다. 어서 목표량을 채우고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다리를 들어 올린다. 스트레칭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그냥 어서 오늘의 달리기를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아침에 정신없이 길을 나서는 이유는 내가 이 시간을 정말로 기다리기 때문이다. 나는 모닝런족이다. 저녁 달리기는 느긋해서 좋지만, 나는 아무래도 아침에 씻기 전에 땀을 흠뻑 흘리기를 선호한다. 달리고, 땀 흘리고, 씻은 뒤 느끼는 간단식과 아침 커피는 이제부터 내가 엄마 말고 내 이름으로의 일을 시작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하루 종일 아침의 이 시간을 기다리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전날 저녁 일찌감치 잠에 들려 노력한다. 나는 잠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에 3.4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에 노는 걸 좋아한다. 적어도 아이 둘을 키우기 전까지는 나는 나만의 시간을 맘대로 누리고 살았다. 보고 싶은 드라마를 DVD와 비디오테이프로 밤새 보기도 하고, 만화책을 탑처럼 쌓아두고 읽었던 사람이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3일에 완독한 적도 있다. 눈은 언제나 새 빨겠고, 사약 같은 커피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보약 같았다. 


그렇게 하루를 노는 시간과 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으로 버티며 살아온 내게 규칙적인 일과 시간은 새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변화였다. 일찍 일어나기(차라리 안 자는 게 좋았다) 놀던 거 멈추고 잠들기(나는 밤새 달려 시리즈를 다 보는 걸 선호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한 노력하기(왜 자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나를 위해 놀 시간이 너무도 좋은데) 나를 위한 시간으로 가족을 위한 시간표대로 살기. 등 혼자 골똘히 놀기 좋아하던 사람에서 가족을 위해 계획된 시간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했다. 


가족시간에 맞춰 살기란 대략 이렇다. 새벽 6시에 출근하는 남편을 위한 간단식 준비하기. 남편은 예민한 장의 소유자다. 그는 과일 몇 조각과 토스트정도를 먹고 길을 나선다. 아이들 아침은 7시 정각, 작은 아이는 7시 30분, 큰아이는 7시 40분에 학교로 나선다. 저녁식사는 대략 6시에서 7시에 이뤄지는데, 그 사이 귀가하는 두 아이와 남편을 위한 간식을 준비해 둔다. 주로 우리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로 내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낮시간은 주로 일을 하는 내게 아침 먹은 뒤의 설거지와 정리, 저녁준비까지의 시간 동안 나는 부단히 도 집에서 뛰어댔다. 손목에 걸음수를 측정해 주는 스마트워치가 식사준비에 분주한 내가 8천에서 1만보를 걷는다고 알려주었다. 


집에만 있었는데도,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 식구들의 식사를 챙긴 지 3시간여 만에 다음 끼니는 빨리도 돌아왔고 또 나는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부려 뭔가 뚝딱 해내느라 바빴다. 사 먹으면 얼마 안 하는 거에 그렇게 힘쓸 일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도 식사 때 가족들에게 무얼 먹일지 고민하는 게 참 고단하였다. 책을 보다가 글을 쓰다가 손에 물이 묻는 일이 다반사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내가 달리기를 알게 된 거다. 


달리기는 나에게 '고독'이자 '해방'이었다. 나는 홀로 길 위에 있기 위해 준비한다. 나는 엄마와 아내에서 원래 나로 돌아가기 위해 길 위에 선다. 그리고 그 시간을 빨리 맞이하고 싶어 안절부절 식구들이 나가기를 기다려 내 길에 선다. 달리기를 기다려하는 이유는 하루를 달리기 위한 전초적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달려서야 기분이 달래진다. 달려야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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