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의 고질병, 불안과 인정욕구를 뛰어넘기

불안과 인정욕구를 이겨보자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by 달리는 작가

러닝인구가 일만을 넘었단다. 한해 마라톤 대회만 300회 이상 개최되는데, 각종 대회의 참가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니 확실히 '붐'이다. T V에선 기안 84가 뛰고, 유튜브에는 션이 달린다. 대형 마라톤은 신청러시가 생기고 유사코스를 뛰는 회는 운영미숙으로 원성을 산다. 이게 모두 러닝이 인기인 탓이다. 십 년 가까이 뛰며 지금처럼 러닝이 사랑받고 또 러닝매너에 대해 이야기된 적이 없었던 듯하다. 동네 친구들은 더러 나를 보고 운동을 시작했음을 알리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또 여전히 운동을 안 하는 친구들은 러너들 때문에 보행자들이 불편하다고 꼭 그렇게 꽉 끼는 옷을 입고 뛰어야 하느냐고 묻곤 했다. 두 그룹은 모두 내게 여전히 뛰는지를 궁금해하는데, 그들에게 나는 건재하다는 걸 집에 차곡차곡 모아둔 메달 사진과 주로에서의 기록으로 보여주곤 한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내 마음의 소리는 나만 간직한 채로 전하지 않는다.



3년 전 처음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골인지에서 나는 이제부터 내가 새로 타는 탄생의 기로에 있다고 느꼈다. 마흔이 넘도록 혼자 여행은커녕 점심 메뉴조차 동행하는 이에게 맞추어 상대가 짜장이면, 짬뽕을 고르는 사람으로 살았다. 엄마는 삼 남매 중 내가 가장 키우기 수월했다고 하셨는데,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알아내어 그걸 잘하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며 살았기 때문이다. 달리기와 마라톤 대회의 참여는 오로지 나 혼자 결정하고 홀로 있기 위해 했던 유일무이한 활동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곧잘 내가 그만두고 자신들의 일정에 맞추거나 가정에 충실한 이전의 엄마로 돌아올 거라 믿었지만 마침내 그들이 만류했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해냄으로써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임을 보여줬다.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서 좀 우쭐했었는데 기록도 나쁘지 않았고 다음날 일상생활에 복귀하여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초등학생 시절 상장을 받아올 때처럼 여기저기 소리 내 자랑하셨고 나는 짐짓 손사래를 치면서도 돌아서서 씩 웃는 모습을 감추느라 헛기침을 뱉곤 했다.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주는 게 참 좋았다. 당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밝혔듯 매일 10km를 뛰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게 그렇게만 되었다면 나는 정말 나를 알아볼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나이 든 어린아이로 머무를 뻔했다.

첫 대회를 치르고 난 뒤, 나는 첫해는 매일 훈련하되 전후 스트레칭이나 근력운동은 게을리했다. 나의 알고리즘과 주변의 러너들의 소문에 따라 마일리지가 중요하다만 새겨 놓았다. 한 달에 뛰는 거리를 늘리려고 잠도 안 자고 근력운동을 가서도 트레드밀 자리가 비워지기 바쁘게 러닝만 주야장천 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지난 3월 동아마라톤 참가 전 2월에는 한 달에 300km를 뛰는 사람이 되었노라 인스타에 인증한 것은 내가 거기에 들인 공을 자타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대회 전에 운동의 질보다 양에 맞추어 내가 해냈노라! 하고 짠 나타나고 싶은 마음. 즉 SNS의 폐해인 과도한 인정욕구의 발현이었다.


인터벌이나, 스킵, 점핑 훈련은 너무 괴로워서 중도포기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 때도 많았다. 이건 나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그런 질적 성장을 추구할 시간에 뛰느라 나는 내 불안을 다른 인정으로 대체해 풀고 있었다. 뭐 결과는 올해 풀코스를 3번 참가했지만, 내 기록은 처음보다 점점 후퇴하고 있다. 회복하는 시간도 점점 더 오래 걸리는데 그때 나는 이번 대회의 성과를 묻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나이 탓' 때로는 '펀런'을 핑계되고 웃어넘기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러너'로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뛰는 사람으로 죽겠노라 마음먹었던 초심을 잃었다. 금세 불안해 다른 관심사로 전향해서 호기심이 유지되는 동안만 그 활동에 몰입했던 그동안의 다양한 취미활동처럼 굴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으로는 핫요가, 스쿼시, 수영, 필라테스를 수강했고 예술적 영역에서는 펜아트, 리본공예, 퀼트 등 다양한 취미의 세계에 발만 담그고 빠져나와 금세 다른 걸 채집하듯 돌아다녔다. 러닝에서도 비슷하게 시티런, GPS지도 그리기 런, 크루활동에 참여해 보았으되 내 본성적인 고질병적 증상으로 즐거운 러닝 활동에는 연습이 부족한 듯해 불안을 대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까봐 불안을 느끼고 살았다.


처음에 대회참여라는 목표를 세우면 어떻게든 연습하는 '성실한 사람'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초연결 세상에서 지금 같이 러닝이 붐인 시대를 맞으니 타인의 성실한 운동 기록은 내 불안증을 심하게 한다. 나는 오늘 쉬었는데, 내일 저 친구만큼 뛰어야지 하는 마음에 잠을 줄이려 들거나 무리한 페이스로 거리를 채우려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엘리트 아니고서는 마라톤 대회는 모두 각자의 레이싱이거늘, 크루 생활을 오래 하면서 연령이 비슷한데 나보다 러닝 입문이 늦은 친구가 기록이 성장하면 괜스레 마음이 상한다. 나도 잘 뛰어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채근한다.


지난 서울레이스에서 골인지 급수대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깨달았다. 하프대회였기 때문에 제한 시간이 3시간이었는데, 페이스가 느렸던 사람들 중 3시간 10분이 넘어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환희를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느린 페이스에도 큰 대회에 참여했다는 희열과 마침내 대회를 마쳤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의 대회에서 1 ~ 3등의 순위에 오르느라 1시간 20 분 정도의 기록을 낸 선수들보다 그들은 더 힘을 다해서 뛰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1등이 아니라서 아쉬울 2,3등 보다 그들이 더 기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회의 목표가 순위가 아니고, 나만의 레이스에서의 성취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안증과 인정욕구를 더디 뛰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었다. 위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옆의 사람의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알게 한다. 그래 마라톤은 한 번 마치고 마는 결과적 행위가 아니라 지속해서 하는 러닝의 한 표현이라는 걸 느낀다. 이제 다시 나는 성실한 나로 돌아간다.

내 마라톤은 인생공부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