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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스턴휴 Mar 17. 2022

일기-02

Wanderlust.3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대략 2011~2012년도 다운타운 어느 바...



-형제여 내말 잘 들어봐, 생각이란건 끝이 없는 절벽이야, 만약 내가 내 생각을 실제로 볼 수 있다하면, 나는 끝없는 절벽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무한하게 깊고 광대하지만, 끝을 보려고 노력할수록 끝이 안보여 더 무서워지는, 나는 생각이란건 그런 것이라고 봐. 그러니까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말라고.

에피는 말했다. 이 투르크 놈은 원래는 항상 직설적으로 말한다. 생각을 하지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영혼의 실체를 본다면 아마도 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푸르지도 검지도 않은 눈동자가 나를 위한 진지한 충고로 빛나고 있다. 그가 진지한 게 드문 일인건 사실이지만 나는 평소에도 그가 매력적인 사람이라생각해, 그의 충고를 듣는다.


'내가 그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것, 그 단순한 호감의 생각조차 나는 끝없는 절벽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정신적 화학작용?, 아니면  '생각 도착증' 의 일부인가?'


-내가 볼때 너는 젠장할 플레이보이도 될수 있는 놈이다. 모든 여자들이 널 좋아해, 너는 다분히 잠재력이 있는 위험한 놈이야, 그러니까 쓸때 없는 생각 그만하라고, 니가 어떤 성향인지 그런건 행동으로 해봐야 하는거지 네놈의 머릿 속으로 생각해봤자 항상 제자리 걸음일뿐이야 한심한 놈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맞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내 성향이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그가 내 생각의 본질을 모른다고 본다. 

-야 이 아타튀르크 같은 놈아, 너는 생각이 몸을 속박한다고 보냐, 아니면 몸이 생각을 속박한다고 보냐? 나는 내 경험상 전자도 확실히 가능하다고 본다.

요즈음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나는 내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대해, 그리고 도대체 실질적으로 그런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아니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두 양성애자인지에 대해 머릿속에 끝없는 절벽을 만들어 끝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끝없는 절벽의 끝을 보려고 노력할수록, 실질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그당시 기숙사 독방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고 있던 참이었다. 에피를 만난건, 나와는 다른 성향인, 행동과 직관을 숭배하는 그가 내 머릿속을 맑게 해주리라, 아니 그냥 절벽에서 뛰어내리라고 달콤하게 속삭여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오 너의 경이로운 이성에 축배를! 긴 역사동안 이성은 몸을 이기지 못했는데, 너는 이성이 몸을 이긴 최초의 인간일꺼다. 생각과 이성이 너를 고자로 만들었지, 대단히 이상한놈, 너를 위해 오늘은 내가 살테니, 마인드이레이저라도 마시고 그냥 잠이나 푹 자렴, 생각을 없애는 덴 알코올만한게 없지.

에피는 나를 유쾌하고 비꼬았다. 그렇지...'생각이 나를 고자로 만들었다'라...


그렇게 맥주에 독한 칵테일로 범벅이 된 나는 내 기숙사로 돌아오며 계속 에피의 말을 되뇌었다.

'생각이 나를 고자로 만들었다...생각과 이성이 나를 고자로 만들었다라...킥킥 기발한 미친놈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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